(행복동산 칼럼 366호) 2016. 12.25
담임목사를 수용하는 성도 되세요
(가사원장 최영기 목사님의 칼럼을 공유합니다)
미국의 한 작은 도시에 작은 교회당을 소유한 한인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담임 목회자가 2-4년마다 바뀝니다. 처음 담임 목회자가 부임했을 때는 잠시 좋아하다가, 얼마 후부터는 불평하기 시작하고 압박감을 주어 목회자를 떠나게 만듭니다.
이 교회 교인들의 담임 목사에 대한 기대치는 대단합니다. 능력은 조용기 목사님 같고, 인격은 한경직 목사님 같고, 설교는 이동원 목사님처럼 잘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담임 목사로 오셔도, 학벌이 시원치 않다, 세속적이다, 강단에서 교인을 깐다, 일관성이 없다, 트집을 잡아 쫓아내지 않을까 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 교인들은 자신들의 분수를 몰라서 이럽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완벽한 목회자가 있다면, 왜 이런 좋은 분이 이런 시골, 이런 작은 교회에 담임 목회자로 오시겠습니까?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것은 이 교인들만이 아닙니다. 많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는 그 교회에 합당한 담임 목회자를 보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분수를 모르고 만족치를 못합니다. 교회 건물이 크다거나, 교인 숫자가 많다거나, 재정이 풍부하다는 등의 자부심으로 담임 목사님을 고용인처럼 생각하고, 목사님의 부족한 점을 꼬집고, 목사님을 배척해서, 마침내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교회도 많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목사는 없습니다. 설교를 잘하면 행정력이 약하고, 친화력이 좋으면 추진력이 약하고, 박력이 있으면 고집이 세고… 모든 목사는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불완전한 담임 목사님을 수용해야 합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담임 목사님을 수용하지 않으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계속 교회가 분열되고, 담임 목사님이 떠나는 어려움을 겪어야합니다. 완전한 목사는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담임 목회자가 모든 교인들의 기대와 취향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교인들의 기대와 취향은 다양할 뿐 아니라 서로 상치되기까지 합니다. 한 사람의 목사가 많은 교인들 비위를 맞출 수는 없는 일이고, 교인들이 담임 목회자에게 맞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부족하게 느껴지는 목사를 수용하고자 할 때에 교인 자신이 아름답게 변합니다. 순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순종하고, 존경할 마음이 없는 사람을 존경하려 할 때에, 겸손해지고, 관대해지고, 인내하게 되며, 예수님을 닮아 가게 됩니다.
불완전한 70점짜리 목사라도, 교인들이 장점과 강점을 키워주면 80점, 90점짜리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단점과 약점을 꼬집고 헐뜯으면 60점짜리, 50점짜리 목사로 전락하고 맙니다.
모실 때에는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일단 담임 목사로 모셨으면 그 분의 독특한 면을 받아드리고, 약점을 커버해 드려야 합니다. 그분을 수용하고, 그분을 좋아해야 합니다.
제가 휴스턴 서울 교회에서 20년간 담임 목회를 잘 마치고 은퇴할 수 있었던 것은 성도님들이 제 단점과 약점은 커버해 주고, 제 장점과 강점이 부상되도록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부사항을 기억하지 못하는 약점을, 사무장을 비롯한 행정 사역자들이 커버해 주었습니다. 제가 쌀쌀하게 대해도, 섭섭해 하기보다는 교인을 편애하지 않는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이랬기 때문에 오늘의 제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날 밤, 제자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실 때 간절히 구하신 것 중의 하나가 제자들이 하나되는 것이었습니다(요 17:21-23).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들기 위해서는 교회가 하나 되어야합니다. 담임 목사와 교인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싸우고 분열하는 교회에서 전도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치 못한 담임 목사님이지만 주님이 보내주신 사람으로 알고 존중히 여기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 교회와 성도들을 예쁘게 보셔서 다음에는 이분보다 훨씬 더 좋은 목사님을 보내주실지 모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