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산 칼럼 347호) 2016. 8. 14
차별화가 답이다
(동성애에 대한 최영기 목사님의 글을 옮겨 봅니다)
미국 대법원에서 동성결혼 합헌 판결이 내려진 후 미국 이곳저곳에서 후유증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얼마 후 한국에서도 일어날 일들의 예고편입니다.
켄터키 주에서는 한 공무원이 동성결혼 등록을 거절했다가 투옥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공무원이 잘못했습니다. 동성결혼은 이제 국법이 되었기 때문에 공무원 신분으로 있는 한 자신의 신앙양심과 상관없이 등록을 해주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인디아나 주에서는 한 케이크 점 주인이 신앙양심에 어긋난다고 동성 결혼식에서 사용될 케이크 주문을 거절했다가 동성애자 단체에 의해 고소를 당했습니다. 주문을 얼마든지 다른 가게에 할 수 있는데 이 가게를 선택한 것은, 법이 자기편이 되었으니까 이참에 반대자들을 철저하게 박살내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 어디까지 확대될까?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하는 목사들이 투옥되는 상황까지 가지 않을까 우려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반 미국 시민들에게 신앙의 자유는 개인의 권리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비영리 단체 자격을 박탈당해서 교인들이 바친 헌금에 세금 공제 혜택을 못 받게 된다든지, 기독교 학교가 동성애 반대 입장을 포기하지 않으면 인가가 취소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United Way라는 단체가 연말에 자선금 모금을 크게 하는데, 모금된 기금을 자선 단체에 배부할 때 기독교 단체는 정치 종교 분립 원칙이라는 미명하에 제외시킵니다. 그래서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YMCA나 YWCA도 자선금을 받기 위해 기독교 색채를 없애고, 가운데 있는 알파벳 C가 ‘Christian’의 첫 글자라는 것조차 숨기고 있습니다(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 비슷한 음성적 탄압이 확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흐름에 저항하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이 시위를 하고 반대 집회를 열지만 별 효과가 없어 보입니다. 일반 대중들은 동성애자들은 핍박 받는 소수 그룹이고, 이들을 옹호하는 것을 민권운동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반대 행사는 기독교인들을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집단으로만 보이게 만들 뿐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동성애자 단체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도면밀한 전략을 짜서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건장하고 잘 생긴 운동선수를 TV에 출연시켜 동성애자 입장을 대변하도록 했고, 애플 회사 사장과 같이 성공한 사람을 내세워서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도록 했습니다. 수많은 파트너와 관계를 갖는 것이 실상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부부처럼 정절을 지키는 동성애자 파트너들을 간판으로 내세워 동성결혼 합헌 판결까지 받아내었습니다. (이 작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분들은 다음 웹페이지에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http:// www.huffingtonpost.kr/marc-solomon/story_b_7676930.html 동성애자 자신이 쓴 글입니다.)
동성애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공격하거나 매도하기보다, 차이점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성간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절을 지키는 부부관계가 얼마나 행복한지,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주변 문화는 지금보다 더 성적으로 문란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차별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기독교는 힘차게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이혼, 간음, 낙태, 동성애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려지는 문화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거룩한 삶을 고집했습니다. 미혼들은 혼전 순결을 지켰고, 부부들은 정절을 지켰습니다. 딸이 태어나면 갖다 버리는 관행 속에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라고 해서 낳아 키웠습니다. 전염병이 돌면 잘 사는 사람들은 교외로 도망쳤지만 크리스천들은 남아서 아픈 사람을 돌보았습니다.
이러한 크리스천들의 차별된 삶은 썩은 시궁창에서 맡아지는 향긋한 꽃향기 같았습니다. 시민들은 이런 삶에 매력을 느꼈고, 이들이 믿는 예수에 관해 관심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어 4 세기경에는 로마 시민들의 절반 정도가 크리스천이 되어 있었고, 당시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던 콘스탄틴 대제는 크리스천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기독교를 공인하게까지 되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들에 의하여 코너에 몰리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세속화에 물들어 세상과 차별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세상 젊은이들과 똑같이 결혼도 하지 않고 성관계를 갖습니다. 크리스천 부부들이 세상 부부들과 똑같이 쉽게 이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하여 핍박 받는 소수로 만들고 계시지 않나 싶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세상을 향하여 크리스천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결혼 서약 전까지 성적 순결을 지켜주는 배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갈등이 많은 부부가 이혼을 선택하는 대신 힘을 합쳐 노력했을 때 얼마나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지, 신앙 안에서 자녀들을 키울 때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는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때에 비로소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이와 더불어 동성애의 추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지 않고 세상의 타락을 비판하고 매도하기만 하면,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편협한 증오집단으로 보게 되어 점점 더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