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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동산 칼럼 274호) 2015. 3. 22

 

 

고난주간을 앞두고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이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나와 동떨어져 있는 알 수 없는 신을 섬기는 타 종교와는 달리 내 안에 계시고 나와 하나가 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그 임재를 맛보아 알고 그 경험을 조금씩 더 늘려가고 결국에는 내 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의 능력은 바로 이 하나님의 임재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고 그 분의 은혜가 나를 감싸고 있다는 것이 강하게 느껴질 때 우리 안에는 그 초자연적인 역사들이 나타납니다. 안 변한다는 성품이 변하고, 절대 못 끊던 술과 담배가 끊어지기도 하고, 생각만 하면 속에서 쓴 뿌리가 올라오고 죽기 전에는 절대 잊을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다던 어떤 일이 잊어지고 그 사람이 용서가 되기도 합니다. 제자가 만들어 지고 있는 교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런 간증들이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역사는 절대로 하나님 쪽에서 일방적으로 시작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지만,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단호한 결단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까지 하나님은 지켜보고만 계신다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누군가를 용서하게 해 달라고, 내 안에 있는 미움을 걷어가 달라고 기도하는 분이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죄를 회개하고 그 죄를 짓지 않기로 결단하고 그 죄와 싸워 나가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십니다.

 

물론 그렇다고 내 결단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아무리 결단하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능력의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지 않는 한 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능력은 100%의 나의 결단을 이용해서 만들어 가시는 100% 순수한 하나님의 역사라는 아이러니한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를 괴롭히는 어떤 문제를 안고 계시는 분들 가운데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하시는 경우,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은 내가 진정으로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어떤 죄를 포기하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그런 노력을 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단지 ‘하나님은 왜 치유해 주지 않으시나?’ 하고 원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그 죄 된 습성에 너무 오래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 의지를 거의 상실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경우는 그 의지를 키우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은 아무리 해도 안 믿어진다고, 좀 믿게 해 주시기를 기도해 달라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도 어쩌면 믿고 싶지 않은 것일 수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내가 포기해야 하는 어떤 악습에 대한 유혹이 강해서, 또는 예수님을 믿을 때 해야 하는 어떤 새로운 삶의 의무가 싫어서 미루고 있는 경우이죠. 즉 믿음조차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고자 하는 나의 결단에 역사하시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주간 시작되는 고난주간에 미디어금식을 선포하고 특새에 참여하면서 실제로 결단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실천해본다면 그 어느때보다도 치유와 회복되는 은혜를 크게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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