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산 칼럼 251호) 2014. 10. 12
자신을 알아가는 아픔
<휴스톤서울교회의 이수관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감동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자기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이 때론 우리에게 아픔일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있기 마련이고, 또 내가 부정하고 싶은 내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모습은 대부분 나의 불행한 과거나 상처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고 있든지, 아니면 알고도 들키지 않으려고 꼭꼭 싸매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그 점이 갑자기 어떤 상황이나 사건속에서 자연스레 혹은 다른 사람에게 지적당하고 들추어졌으니 그것이 아픔으로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는 반응은 보통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점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사람 잘못 봤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서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사실 내가 그랬던 것은 이러이러해서 그랬던 것이다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핑계가 많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핑계를 대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정직하게 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다른 반응은 자기 스스로 느끼던지 아니면 지적을 받고 수치를 느낀 후에 내면에서 상대방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입니다. “야,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났기에? 너는 뭐 그런 문제가 없는 줄 아니? 너는 더하면 더 했지 나보단 덜하지 않아.” 하고 말이지요. 사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여서 그 사람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자기 눈에는 안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무엇을 평가하고 지적하고 왈가왈부 할 수 있을까요? 결국 나 역시도 조금 더 치장하고 있고, 숨기고 있을 뿐이지 사실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어쨌든 지적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상대방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우리는 우리자신의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월이 지나면서 영적인 체험을 많이 하고 무언가를 알게 되고 그래서 스스로 믿음이 성장했다고 생각해도 실제로 우리의 성품과 기질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지적과 평가를 두려워하고 언제나 이 두 가지 모습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본성과 싸워야(청교도들처럼 피흘리기까지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합니다. 그리고 핑계를 대지 말고 속상해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드려야 합니다. 또 상대방에게 복수를 하려 드는 나의 본성과도 싸우고 눌러야 합니다. 그것은 때로는 아픔이지만 그럴 때 비로소 내 문제가 보이기 시작하고 주안에서 치유를 위한 첫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지적을 받거나 내 단점이 드러날 때, 이런 두 가지 양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한 동안 저의 기도가, 영적인 과제가 <지적받을 때 핑계대려고 하지 않고 내면으로 복수하지 않기> 였습니다. 얼마동안 이 기도를 해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조금은 습관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의 문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습니다. 목장은 그런 의미에서 어떨 때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아픔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그 때에도 다른 이유를 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수하려고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내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 때 치유가 시작되고 자유로운 자아가 그 뒤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럴 때 이 고백 속에 담긴 주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