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775호> 2024. 11. 3.
“공동소유”
아는 이야기지만 조금 다른 표현과 느낌으로 교회 분위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진짜 성경적인 신약교회의 영성을 다시 회복한 공동체라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가정교회가 추구하는 세 축과 네 기둥이 잘 정착이 되어서 실제적으로 형제자매들 관계에 세 축과 네 기둥의 모습이 균형 잡힌 분위기로 "자연스러워지면” 그 교회 안과 밖에서 누구나 쉽게 느끼게 되는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모습이지요. 외부적으로는 "두려움과 호감",내부적으로는 "공동소유와 영혼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이 네 가지 자연스런 증거를 늘 마음에 두고 우리 교회가 외부적으로 또한 내부적으로 이런 증거들이 계속되고 있는지 질문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지역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이미 예수 믿은 일반 교회 사람들은 우리 교회 식구들의 교회 생활을 보며 두려워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구역예배도 힘든데 어떻게 매주 만나서 밥을 먹어요?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하면 늘 남 이야기 하다가 소문이 되어서 다투곤 하는데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요? 자기 하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뭘 그렇게 남의 일에 끼어서 간섭하며 살아요?”하면서 두려워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는 하지만 뭐가 예수 믿는 것인지 영적인 관계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인한 변화를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종교 생활의 열매요 고백입니다. 반대로 예수님 모르는 분들은 호감을 갖습니다. "그렇게 식사 대접도 자주 하시고 진지한 대화도 나눌 수 있다니 참 부럽습니다. 그 교회 사람들은 말이나 사업하는 방법이나 남 돕는 일에 그렇게 열심이시니 참 좋아 보이네요. 그 교회 다니면 사람이 변한다는 이야기 많이 듣는데 진짜인가요?” 물론 추상적인 표현이긴 해도 좋은 쪽으로 섬기고 나누고 베푸는 모습에 사람들이 호감을 같습니다. 이런 표현들을 우리 교회를 아는 지역사회 사람들로부터 듣고 있는지를 점검하면서 목회했습니다. 물론 시작은 별로 좋은 소리 듣지 못하는 교회였지만 세 축과 네 기둥이 자연스러워지자, 비록 교회 안에서의 변화일지라도 지역사회가 그 변화를 인식하는 증거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부적으로는 공동소유와 영혼구원의 증거였습니다. 사실 영혼구원은 어느 가정교회나 가장 중요한 신약교회의 증거로 기준을 삼기 때문에, 통계도 내고 늘 설교 가운데 교회 존재 목적으로 듣고 있어서 변화된 공동체라면 쉽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동소유에 대해서는 오늘 우리 시대에는 조금 다른 적용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신약교회처럼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공동소유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공동소유를 "깊은 희생을 담아서 서로의 필요를 극진히 채워주는 모습”으로 연습했습니다. 가장 단순하게는 여러가지 섬김의 표현과 나눔과 헌신의 태도로 공동소유의 자연스런 분위기를 만들어 갔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필요를 채우는 내용에 있어서, "필요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그런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 사람에게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런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서" 채워주는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가장 큰 필요는 예수님을 알게 하는 것이지요.
한국 문화 속에 있는 여러가지 체면 따지기와 아닌데 그런 척하는 이중적인 가치가 이런 필요를 채우는 일을 어렵게 하지만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된 넉넉함 자유함 따뜻함은 필요를 "알게 해서" 필요를 "채우는"공동소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많이 설교하고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교회 영적 분위기가 외부적으로 "두려움과 호감" 내부적으로 "공동소유와 영혼구원"이라는 영적 분위기가 교회 공동체 안에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도 형제자매님들이 서로 서로의 필요를 알게 해서 그 필요를 채우는 멋있는 모습이 저 스스로 "성령의 증인으로 사는구나!”하는 기쁨을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즉 우리가 죄인인 줄도 모를 때, 우리가 죄인이라는 절망적 사실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일부러 오셔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원을 누리게 하신 사실을 “공동소유”라는 신약교회의 영적 원칙으로 연습을 한 것입니다. 본인이 모르는, 그러나 본인에게 꼭 필요한 필요를 알게 해서 그 필요를 채워주는 늠름함이 성령께서 다스리신다는 중요한 증거로 나누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북미 가사원장이며 미국 올랜도 비전교회 원로 김인기 목사님의 최근 칼럼입니다. <외부적으로는 두려움과 호감, 내부적으로는 공동소유와 영혼구원>이라는 말씀이 뇌리에 꽂힙니다. 아울러 이것을 교회에 적용하기 위하여 서로 서로의 필요를 알게 해서 그 필요를 채우는 멋있는 모습가운데 담임목사를 비롯하여 교인들 스스로가 <자신이 성령님의 증인으로 살고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도록 하는게 신약교회를 향해 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갖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런 시행착오의 과정들 속에서 조금씩 성화(聖化)되어가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이웃사랑 선교바자회>에서 보여준 우리 교인들의 모습이 바로 <깊은 희생을 담아서 서로의 필요를 극지히 채워주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어떻게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 중에 가장 중요한 한가지가 바로 <교회 공동체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몸인 교회 공동체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흔적(스티그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은 요한계시록 2:20의 <...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는 말씀처럼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우리는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천국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