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767호> 2024. 9. 8.
“신앙인으로 존경스러운 부모 모습 보이기”
가정교회는 영혼구원이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요즈음 가정교회 안에서도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지만, 영혼구원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자녀들의 구원입니다.
요즈음 많은 크리스천 가정의 자녀들이 대학을 가면 자연스럽게 교회를 떠납니다. 한 예로, 우리 교회에서는 한동안 미국으로 대학 진학을 해서 오는 경우, 교회를 다녔다는 이유로 다른 교회를 찾으라고 하고 돌려 보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와 함께 신앙생활을 한 것은 본인의 신앙이 아니더군요. 그건 목회자의 자녀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경우 가만히 두면 자연스럽게 교회를 떠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녀들이 대학을 진학하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부모의 신앙을 보면서 매력적이지 않고 닮고 싶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고, 심지어는 그 모습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그런 자녀들은 대학을 진학할 때 집에서부터 먼 곳에 있는 학교를 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좋은 학교를 찾아서 멀리 가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가정교회는 훨씬 낫습니다. 목장에서 크는 아이들은 그래도 부모의 선한 신앙을 보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부모가 목자/목녀의 경우라면 늘 섬기는 모습을 보았고, 목장 식구들에게 양보하는 모습과 VIP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기 때문에, 그리고 삶의 모범이 되려고 노력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신앙을 잘 지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앙은 내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도 딸아이가 출가하기 전에 신앙인으로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의 기억에 남을 만한 얘기가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저를 좋은 아빠로는 인정해 주는 것 같은데, 신앙인으로는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것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이런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것을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단, 경건의 모습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자녀들 앞에서 신실하게 기도하고, TV 앞에 앉아있는 대신 성경을 읽는 모습, 예배 참석에 성실하고, 혹시라도 함께 예배 드린다면 예배에 집중하는 모습은 자녀들에게 존경을 심어줄 것입니다. 특별히 아이들의 잠자리에서 기도해 주는 부모의 모습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무슬림 가정에서 자라서 크리스천이 된 사람이 쓴 책을 읽고 있는데, 그는 어릴 때 아버지가 경건한 모습으로 무슬림의 기도문을 외우는 그 의식(Ritual)을 통해서 영적 지도자로서의 아버지의 권위를 느꼈다고 하는 것을 읽으면서 경건의 모습은 꼭 필요하구나 싶었습니다.
두번째는 위기 앞에서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위기가 오면 허둥지둥하고, 초조해 하고, 그러다가 화를 내고 감정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하는 것이 가장 확연히 들어날 때가 바로 위기가 왔을 때입니다. 그 때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자녀들은 우리에게 신앙인의 매력적인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위기상황에서 여유를 부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진중하지만 하나님께 신뢰를 두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13년 전의 얘기입니다. 아내와 딸아이를 데리고 유럽에 여행을 갔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녁에 스위스에서 기차를 타고 이태리로 와서 그 다음날 아침에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어찌 어찌하다 마지막 기차를 놓쳤습니다. 비행기표가 마일리지로 산 것이라 연기가 될지 자신이 없었고, 딸 아이는 학교로 돌아가서 그 다음날부터 시작하는 수업을 들어야 했습니다. 뭔가 방법을 찾아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완행을 타고 어디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가다가 그만 호텔도 없는 시골 마을에 발이 묶였습니다.
자정이 훨씬 넘어 모든 곳의 불은 꺼졌고, 조그만 동네 광장에는 술 취한 젊은 청년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그 시간에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린 딸과 눈이 안 보이는 아내를 데리고 정말 허둥지둥 했습니다. 물론 저는 기차를 놓치는 순간부터 수없이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지만, 딸아이가 보기에는 허둥지둥 초조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빠가 보였을 것 같습니다. 그 때 불안해 하는 식구들에게‘하나님께서 지키시고 해결하실 거야. 이 시간 우리 하나님을 바라 보자’하고 용기를 주고, 아빠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있습니다.
세번째는 눈앞에 있는 이익에 흔들리거나 손해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눈앞에 있는 이익에 집착하고 손해를 볼 때 못 견뎌 합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들에게 후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이 하나님의 풍성함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줄 때 부모님의 신앙이 매력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특별히 자녀들에게 조심해야 하는 것은‘우리 부모님께는 나보다 돈이 더 중요해’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어느 부모가 자녀보다 돈이 더 중요하겠습니까만은 많은 부모들이 그런 오해를 받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 돈에 먼저 관심을 두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네번째는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에 대한 간증을 자녀들에게 나누어야 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때로 그것을 교회에서 간증하지만 자녀들에게는 그것을 나누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자녀가 부모의 신앙을 알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내가 그토록 생생하게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얘기를 정작 내 아이에게는 들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아이가 중학생쯤 되었을 때 였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 얘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 후 딸 아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몇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약간씩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보냈는데, 결국 이 아이의 믿음을 잡아 준 것은 엄마의 간증이었습니다. 신앙의 문제로 고민을 하던 때 우연히 인터넷에 떠돌던 엄마의 간증을 듣고 큰 의문이 해결되었고, 아빠가 어릴 때 들려준 간증이 그 때에 도움이 되었다고 나중에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유하고 인자한 모습이겠지요. 소리를 지른다거나, 말실수를 한다거나, 험담을 한다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곤란하겠지요.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신앙을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곳은 가정인 것 같습니다.
(국제가사원장 이수관 목사님의 최근 칼럼입니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저 역시도 도전과 은혜가 되는걸 느끼게 됩니다. 부모가 되고 부모로 살고 부모로서 비쳐지는 모습들이 항상 좋고 바른 것 만은 아닌데 그래도 주일 가족목장을 통해서 소통이 되고 오해가 풀리고 서로의 감정과 느낌을 고백하면서 다시금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느끼면서 가정역시도 성령님의 임재와 통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족 이상의 가족을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역시 가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을 보고 배우는 과정 속에서 좋은 것만이 아니라 우리 부모 역시도 연약한 인간임을 알게 되고 자신이 긍휼히 여겨야 하는 대상임을 배우게 되고 또한 그런 가운데서도 부모가 진실되게 온전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의지하는 모습가운데 신앙의 전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손자가 없다는 말이 문득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부모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고백하는 자녀의 삶은 그렇게 자손 만대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에 현재 지금 내가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 자녀들이 그대로 보고 배우는 믿음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