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765호> 2024. 8. 25.
“첫 심방 세 시간”
저는 인생을 살아도 그렇고, 목회를 해도 그렇고 “소통과 분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르다고 생각합니다. 목회하는 동안 우리 교회 리더쉽의 영성이 소통과 분별에 대해 깊어지도록 엄청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가정교회를 시작할 때 오해 했던 것 중에 하나가 “원칙”에 대한 소통과 분별이었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고 아니라면 안하는 원칙은 당연한 원칙이지만, 그 원칙을 어떻게, 어디에, 어떤 방법으로 적용하느냐는 엄청난 분별이 필요한 원칙이기도 하고 사람마다, 관계마다, 공동체마다 다른 적용이 필요한 원칙이기도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가정교회는 심방을 안한다”는 이상한 오해를 가진 분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심방에 대한 오해는 목자에게 사역을 “위임”한다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목자들의 리더쉽을 세우는 과정에서 목회자가 “너무” 간섭하거나(어디까지가 “너무”인지 분별이 필요한 “너무” 입니다), 일반 교회처럼 목회에 관한 “모든” 사역을 목회자가 대신해 주는 모습(여기도 “모든”이 어느 정도까지가 “모든” 인지도 분별이 필요하지요)을 균형있게 조정해야 한다는 분별의 의미에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위임”이라는 내용을 오해한 나머지 목자들에게 사역을 맡겼으면 "간섭하면 안된다“는 식으로 방임하다 보니, 교회 식구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기도해 주고 인도해야 할 목회자가, 교회 식구들과의 관계가 분리되는 현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혹 목자와의 관계가 어려워지거나, 이런 원칙을 간섭, 거부나 무관심으로 잘못 오해한 리더쉽이 생기면, 우리에게 맡겼으니 간섭하지 말라는 적대 관계로까지 나타나는 현상도 종종 보았습니다.다 소통과 분별의 미숙에서 나오는 열매들입니다. 사실 목회자라도 성격에 따라서 사람과의 만남을 어색해 하거나 대화를 잘 풀어나가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의미를 잘 소통하게 하고 원칙을 잘 적용하는 분별력을 길러주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사람을 만나서” 얼굴 표정과 몸의 표현들을 관찰하며 이멜이나 카톡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대화의 의미를 분별하려고 노력하는 목회를 했습니다. 직접 찾아가고 만나고 대회를 직접 듣는 목회를 했습니다. 물론 교인이 많으면 어떻게 모든 사람을 만나냐고 하겠지만, 일단 적은 수의 리더부터 그분들의 성향과 언어와 관계를 파악하는 소통의 노력이 있다면 사람이 많아도 리더들을 길렀기 때문에 분별있는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목자들에게 사역을 위임하는 과정도 그냥 위임만 하기보다, 위임 받은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사역의 의미와 목적과 방법을 설득하고, 실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연습도 시켜드리고, 사역의 체험이 본인에게 즐거움으로 다가오는지 또는 책임감으로 느껴지는지도 점검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지나고 나서도 위임받은 사역을 즐기고 있는지 가끔 묻기도 하고 계속적인 격려를 나누며 위임을 했습니다. 그런 위임이 가능하려면 신뢰가 만들어지는 관계가 중요하고 그런 신뢰는 서로 삶을 잘 알아야 가능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식구들과의 첫 만남이 되는 첫 심방을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동시에 그 첫 심방은 어떻게 하는지 전 교회 식구들에게 컬럼, 광고, 심지어는 설교 주제가 “아름다운 관계”라면 설교의 일부분으로까지 심방에 대해 미리 설명을 했습니다.
저는 조그만 변화라도 가지려면 일단 6개월 전부터(1) 왜 이런 변화가 필요한지(원인), 그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과정), 그런 열매를 가지면 개인과 공동체에 어떤 즐거움과 변화를 열매로 체험하게 될 것인지(결과)를 전 교인이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도록, 목회서신과 광고시간과 삶공부와 각종 모임에서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동시에 그 설득의 방법으로는 변화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묘한 부정적 발언이나 수근거리게 하는 소문이나 잘못된 습관에서 나오는 얼그러진 정당성들을 미리 다 "드러내서" 설명하고, 그런 부정적인 의견에 대해 전 교인이 어떻게 "답을 해 주어야 하는지도" 미리 분별하도록 가르쳐주곤 했습니다.
저는 얼그러진 결과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말 자체에 흔들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부정적인 의견은 부정적인 습관과 자기 증명이라는 죄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전교인에게 밝히고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런 부정적인 발언이나 소문을 말하면 “아! 이 사람은 생각의 습관이 부정적이구나”라는 사실을 전 교인들이 분별하도록 도와 드렸습니다.
앞에서 예를 든 “첫 심방 세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공동체에 알려드렸습니다. 첫 심방은 세 시간하는데 (1) 저와 제 아내만 갑니다 (2) 식사는 안합니다. 자매님들이 목사 왔다고 음식을 차리면 자매님은 진솔한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오전 10시-1시/ 오후 2시-5시/ 저녁 7시-10시 세 시간 대에 본인이 선택해서 시간을 정합니다. (3) 첫 한시간은 제 소개를 합니다. 두번째 한시간은 형제자매의 삶을 듣습니다. 세번째 한 시간은 교회와 신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들은 가정 이야기를 근거로 성경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삶을 위해 기도해 드립니다. 이렇게 첫 심방을 하고 나면 반복된 심방을 안해도 가족같은 느낌으로 교회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목자들을 통해 모든 가정의 형편과 기도제목을 듣기 때문에 이런 매뉴얼을 나누어 드리고 그렇게 실천함으로 목자님들이 이 메뉴얼을 숙지하고 나면 매번 이야기할 필요 없이 첫 심방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목자님들이 잘 인도합니다. 특히 VIP가족을 심방할 때는 제 언어도 바꾸고, 목사를 약간 불편해 할 수 형편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고 예수님 모르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와 생각들을 존중하며 친근하고 편안한 관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시작합니다.
목회자와 목자가 잘못된 위임으로 경쟁 관계로 변질되었다면 그것은 목회자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피차에 어리석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모습도 종종 보았습니다. 특히 목회자가 내편 니편을 갈라 놓는 성품을 가졌다면 가정교회 목회는 아주 힘들어집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알 수 있느냐 하면 사람의 관계에 행복한 관계를 열매로 가질 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적으로 느낍니다. 아무리 자기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사람 관계가 반복적으로 얼그러진다면 뭔가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는 종교적 어두움에 있는 것은 아닌지 분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심방을 예로 들었지만 정말 가정교회는 소통과 분별의 영성을 잘 연습하고 목회자 스스로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통로가 되어서 감사가 넘칩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깊어질수록 사람과의 소통도 깊어지고, 코람데오라는 기도의 감각이 깊어질수록 성령님 주시는 분별도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멋있는 가정교회 목회입니다. 할렐루야...
(가정교회사역원에 올라온 북미 가사원장 김인기 목사님의 칼럼입니다. 굳이 세시간 정도의 심방은 아니라 할지라도 김인기 목사님의 심방은 담임목사의 뜻과 동일하기에 칼럼을 읽는내내 공감과 함께 좋은 통찰력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가정교회를 시작할 때 오해 했던 것 중에 하나가 “원칙”에 대한 소통과 분별이었다는 서론은 담목 역시도 매우 공감되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초창기 가정교회로의 전환되었을 때에 심심치 않게 들었던 이야기는 ‘목사님이 자기 편할려고 목자들에게 사역을 위임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세축과 네기둥, 특히 목회자와 성도의 역할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성경적인 사역분담을 이해하지 못한 불통과 분별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통과 분별하지 못한 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예를들어 장례가 났을 때나 병원 입원 등 일반 가정심방을 해야할 경우에도 목자나 초원지기의 요청이 없으면 동행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응급상황일 경우에는 해당 목자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담목 부부가 먼저 가는 경우도 허다하였고, 담목 부부가 먼저 목원의 상태나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에 해당 목자나 초원지기에게 알려서 목양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 것을 통해서 사역의 위임을 통해 목자를 목자답게 세우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담목에게는 <소통과 분별>이라는 것은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다 담목과 같지 않기 때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 나라라는 빅픽쳐를 가지고, 또한 신약교회 회복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왜 주님이 나같은 자를 부르셨는지, 부르셔서 무엇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 숙제를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또 하나의 뻔한 교회가 아닌 진정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고자 한다면 목자나 초원지기 나아가 목자의 목자인 담임목사의 지도력을 믿고 신뢰하면서 무엇이 성경적인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면서 마음을 나눌 때 우리는 관계속에서 진정한 주안에서의 소통과 분별을 이루어 갈 것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