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706호> 2023. 7. 9.
“강단설교는 담임목사를 그냥 믿고 맡겨주세요”
10여년 전에 어느 가정이 교회를 떠나면서 담임목사의 주일설교 <표절>에 대한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사도행전 설교를 주일에 시리즈로 하시는데 어느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어느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님의 설교와 동일한 내용으로 전문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은 명백히 <설교 표절>이라고 단언하고 도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가정교회 전환 초기였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안수집사 12가정가운데 무려 9가정이 순수하지 못한 이슈(예를들어, 장로를 시켜달라거나 교회의 이행강제금 부과에 따른 부담감, 목자목녀로 섬기는 것에 대한 오해 등등)들을 가지고 담임목사를 힘들게 하고 교회가 어수선한 상태여서 담임목사의 설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직격탄(?)을 맞고보니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저로서는 사실 정신이 없었고 그러한 불필요한 오해로 인해 신실한 성도들이 흔들릴까봐 주일 강단에서 그렇게 느끼셨을 분들과 교회 앞에 잘못을 시인하고 설교의 출처를 밝히고 공개사과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이후로 <설교에 표절이라는 말이 옳은 것인지, 그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나름 정리해 둔 것을 지금은 우리 사랑하는 행복가족들에게 담임목사의 본심과 진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펜을 들었습니다.
첫째로, 우선 <설교 표절이라는 말에 대한 오해>입니다.
표절(剽竊)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시나 글, 음악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자기것인양 몰래 따서 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기것인양 몰래 따서 씀>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러번의 강해설교 세미나를 통해서 저자가 자신의 설교집 전문을 인용, 발췌하여 사용하는 것을 허락받았고, 또한 이미 책으로 발간된 것을 합당하게 구입하여 사용하였기에 우선은 <몰래 따서 씀>이 아닌 것을 말씀 드립니다. 당시에도 이미 그런 사실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논문 표절이 매스컴을 통해 회자되고 있었던 만큼 설교와 논문이 다르다는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해 자꾸 표절이라는 말을 쓴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설교에 있어 표절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둘째로, <과연, 설교 표절과 설교 저작권이 성경적일까?>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설교는 ‘성령님께서 참 예수 복음의 주인이신데, 사람의 창작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복음적인 교리를 전하는 것에 대해 가톨릭에서는 신부의 강론으로 말하고, 개신교에서는 설교라는 이름으로 대부분 목사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발맞추어 신학을 하지 않은 장로, 집사, 성도까지도 자유롭게 성경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설교가 누구로부터 오는가?> 설교자가 성경을 보고 머리를 쥐어 짜서 만들어 낸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영이시고 스승과 목자되신 성령께로부터 바른 진리의 복음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으로부터 온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일 확률이 99.99%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심찮게 목사나 성도들 입에서 ’설교를 표절했다! 내 설교의 저작권은 나 아무개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설교는 사람이 만든 창작물이 아닌 이상, 성령께로부터 그냥 주어진 전적인 은혜로서 받은 묵상의 연장선에 있는 복음의 메시지인데, 그 설교 메시지를 어찌 내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내 설교를 표절했다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논할 수 있을까요? 남녀노소든, 장로든, 집사든, 성도든, 목사든 누가 설교를 했던간에 오직 예수 성령께로부터 온 성경적인 메시지라면 그것을 서로 공유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고린도 교회의 여자는 잠잠하라!‘라고 했다면서 여자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던지, 목사의 아내에게 직분을 주지 않고 회중에게 사모로 부르게 하는 것이라든지, 여목사의 남편을 회중이 사부로 부르도록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하기에, 예장 합동측에 몸담고 있는 목회자로서 총회의 결정을 존중할 뿐, 남녀노소 누구라도 영과 진리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성경을 풀어주시는 성령님이 주시는 레마를 묵상하며 간증할 수 있고 또한 그런 영감있는 설교를 다시 반복하여 회람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분명히 성도님들이 아셔야 하는 것은, 교회사를 보면 어떤 설교의 역사라도 누군가의 설교를 빌리는 것(borrowing)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전통이었으며 오히려 그것이 신앙의 정통성을 보장하는 방법이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어거스틴(Augustine)은 제롬(Jerome)의 설교 원고를 그대로 대신 읽기도하고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 유명한 어거스틴의 철학적 사유의 근거나 설교는 어거스틴이 시세로라는 학자의 글의 일부만 참고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어거스틴이 시세로의 글의 전부 혹은 어느 정도를 정확하게 “빌려왔는지(borrow)”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의 설교는 많은 교회 교부들에 의해 복사되고(copying) 전파되었습니다. 프란체스코 수사들은 교회가 직접 발행한 설교 모음집과 예화집을 사용하여 그대로 설교할 정도였습니다. 또 다른 예는 종교개혁 당시 성직자들이 허가받은 설교 원고들만을 강단에서 읽도록 요청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그들 자신에 의해 작성된 설교 원고가 아니라, 이미 교회 전통 안에서 승인받은 설교 원고만을 읽도록 요구받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초기 연합감리교 그리고 현대 연합감리교에서는 설교자들에게 존 웨슬리의 설교집을 원문그대로 그들의 신학 형성과 양육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도 그 예일 것입니다. 우리 복음주의 계열에서 유명한 쟝 깔벵(J. Calvin), 챨스 피니(C. Finney), 디엘 무디(D.L. Moody), 빌리 선데이(Billy Sunday), 그리고 빌리 그레함(Billy Graham)의 설교들도 “대량 인쇄”되어 복음주의 계열 설교자들에게는 설교 사전처럼 전문 사용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로, 교우들이 생각하는 우려는 다음과 같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혹시 너무 바쁘셔서 아니면 개인사정으로 인해 미처 설교를 준비하지 못하셔서 안할 수는 없고 다른 분에게 맡길 수도 없으니 그래서 그렇게 쉽고 빠르게 남의 설교를 베끼고 인용하는 것이 아닌가? 준비되지 못함 이전에 이것은 설교자로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가 아닌가?>라고 염려하고 혼돈에 빠져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설교는 그 교회 공동체의 영적리더인 담임목사가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말씀을 찾고 묵상하여 선포하는 담임목사의 고유권한이며 소명받은 목양의 의무가운데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설교집의 전문을 인용할 지라도 수많은 설교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게 쉽지 않고 아무리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라 할찌라도(예를들어서 담임목사가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그대로 전한다고 해서 그분의 영적인 파워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것이 꼭 우리 교회 현실에 맞는 것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살펴보는 것을 반복하고, 선택하였다 해도 재묵상을 하면서 취사선택을 하는 것에도 많은 시간과 또 다른 검증과 확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아셔서 쉽고 빠른 것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52주일을 그렇게만 할 수 있는게 아니고 담임목사의 목회적 판단에 우리 교회공동체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예를들면, 10여년 전에 우리 교회가 어수선할 때에 사도행전적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담임목사 보다 더 유능한 분의 <사도행전 설교집>을 사용했다거나, 이번처럼 중보기도가 다른 기수보다 약화되는 것 같아 <기도 시리즈>에 대한 시리즈 설교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을 경우에 시한적으로 더 깊고 탁월한 기도에 관한 설교집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게 인지상정입니다. 영적인 부모역할을 하는 담임목사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은 늘 간절합니다. 하여 때때로 그것이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해당하는 비난을 받을지라도 그것이 주님앞에 죄가 되지 않는 합당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의 것이라도 주어서 담임목사 자신은 물론 그 리더쉽에 순종하는 성도들을 자기 수준 이상으로 성장시키고 성숙시켜 하나님 앞에 성공시켜 드리고픈 간절한 마음입니다.
결론적으로,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강단설교는 담임목사를 믿고 그냥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매일 성경읽기와 말씀묵상, 그리고 중보기도를 게을리하고, 매주간 경건서적과 참고도서들을 읽는 소위 <말씀과 기도의 삶>을 불성실하게 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언컨대 담임목사 18년차 된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향한 담임목사의 개인 경건 생활과 말씀준비에 따른 노력과 최선을 부족하지만 우리 주님과 곁에서 오랜시간 지켜보았던 많은 신실한 평신도 지도자들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은퇴 이후에라도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마지막까지 이 부분에 대한 신실함은 담임목사가 주님께 약속하고 자신에게도 결단한 부분이기에 이 약속이 지켜지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리를 하자면 A목사가 설교한 메시지가 성령 안에서 바른 진리라는 확신이 설 경우, B장로 C집사 D성도 E목사 등등 그 메시지를 회람식으로 돌려서 함께 듣고 퍼나르고 편집해서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설교 표절이니, 설교 저작권이니 이런 생각과 말들로 스스로 혼란스러워하고 사단에게 틈을 주어 믿음에서 흔들리지 마시고 내가 속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른 복음을 전하는지 정말 좋은 것을 먹이기를 원하는지 이를 경계하면서 분별해야 할 것이며, 이웃교회 설교 메시지 중에 참 예수 복음으로 영안이 떠져서 보인다면 누구라도 말씀을 가져다가 전해도 되고, 좀 더 살을 붙여서 선포해도 된다는 것에 자유함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설교의 표절이나 설교의 저작권 얘기가 나오는 것은 구글의 무료 무제한 업로드로 인기를 얻고 수익이 창출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되다 보니까 경쟁적으로 내 것 타령을 하는 것인데,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창작물을 가지고 그럴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인 사역자된 우리는 제발 그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자 입장에서는 열심히 설교 영상을 게시하다 보니까 구독자와 조회수가 늘어 수익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겼다고 할지라도 돈에 눈이 멀어 표절이니 저작권이니 이런 주장을 한다면, 성령께서 돈을 사랑하는 일만 악의 뿌리를 그 마음에 심어주어서 영생 천국을 박탈하는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됨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담임목사가 몇 년 전부터 설교를 홈페이지에 게시하지 않는 점이나 힘들게 쥐어 짜내는 고통이 있는 매일성경 말씀묵상을 국적을 불문하고 원하는 어느 목회자나 선교사, 성도라도 무상으로 나눔을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강단에는 두 가지 숙제가 동시에 있을 것 같습니다.
➀ 설교자들은 교회 전통이 다른 이들의 설교를 자연스럽게 차용, 인용, 발췌, 복사해왔다는 것을 숙지하고 자신들이 하는 설교가 자신들의 것이 아닐 경우에는 그것이 훔치는(stealing) 것이라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차후라도 그 설교의 출처를 청중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점, 이것은 설교자 자신이 하나님과 교회 앞에 떳떳하게 쓰임받는 길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스스로 진리를 연구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에 주시고자 하는 말씀의 역사를 이루는 온전한 통로가 되기 위해서이고, 설교는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보호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➁) 또 하나의 숙제는 지역교회 회중인 성도들입니다. 지역 교회 회중인 성도들은 지역 교회 설교자들에게 그들의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설교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 교부들의 설교, 종교 개혁가들의 설교, 교단 전통과 연결되어 있는 설교자들의 원본설교를 지역 교회 설교자들의 음성을 통해서 그대로 듣고 혹은 그런 설교의 일부를 인용, 복사, 차용, 발췌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형태의 강단 패러다임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진행되고 있지만 그것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는 분들로 인해 퇴색되어 가고 있는게 현실이기에, 이것은 성도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영적인 리더를 담임목사를 지속적으로 신뢰해 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바라기는 목회자가 게으름이나 불성실로 인해 쉽게 설교를 하고자 하거나 비윤리적으로 다른 목회자의 설교를 전용하는게 습관적인게 아니라면, 영적인 지도자인 목사가 설교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고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말씀을 공급하고자 하는 열망을 교우들이 분별하여 담임목사를 신뢰하고 그가 전하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할 때에 공동체가 그리고 회중 한사람 한사람이 주님이 소원하시는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오히려 기뻐하시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담임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해석하여 전달하는 자로서 우리에게 신령한 유익이 되고 우리 교회를 세워가는데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쓰임받을 수 있도록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성도 자신의 유익(복)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섬김이고 사역이 될 것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