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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701> 2023. 6. 4.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사람

 

어떤 직책을 맡거나 직분을 맡든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맡은 일이나 책임 등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이거나 직무 태만입니다. 또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 부정이나 비리가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지난 원장코너(454)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요한복음 세 구절에서 말씀을 하셨고, 하지 말아야 할, 즉 주의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누가복음 14장 세 구절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시지 않는 사람(26)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본문에서 미워한다는 말은 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앞자리에 두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일 다른 것을 예수님보다 앞에 둔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친척들이나 친구들의 모임에 빠질 수가 없어서 예배를 빠진다면, 예배를 받으셔야 할 하나님이 주님이 아니라, 그들이 주님입니다. 가족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가족들이 주님이 됩니다. 나의 게으름이나 욕망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일을 한다면, 내가 주님이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정해지고, 생각에 따라 행동이, 행동에 따라 습관이, 습관에 따라 인격이, 인격에 따라 일생이 정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삶을 살려면 몸의 등불인 눈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지 않는 사람(27)

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자아 즉 에고(Ego)를 내려놓는(죽이는)것을 뜻합니다. 주님을 믿는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존심(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나 품위를 지키거나 높이려는 마음)은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지 못하면, 교만이 고개를 들게 됩니다. 잠언 6:17-18에서,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중의 첫 번째로 교만을 지적 하였습니다. 교만은 심지어 하나님과 자신을 비교하며,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시도까지 하게 만듭니다. 교만은 흘기는 눈이나, 거짓말하는 혀로 드러나며,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33)

셋째로, 소유에 대한 욕망을 버려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디모데전서 6:10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어떻게 부자가 되려고 하느냐, 어떻게 부자가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부자가 된 후에 어떠한 모습으로 사는가 역시 중요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다가 스스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 합니다.

골로새서 3:5은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우상숭배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을 앉혀놓는 것입니다. “돈에는 장사가 없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지출에 수입을 맞추려고 하면,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탐욕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심히 일하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출에 수입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수입에 지출을 맞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욥도 이 세 가지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소유에 대한 욕심과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잘 통과(욥기1)하였으나, 자기 십자가를 지는, 즉 자존심(에고)을 버리지 못하여 고생하는 내용이 욥기 2-41장에 나옵니다. 이를 통과한 후에야 욥은 귀로만 듣던 주님을 눈으로 뵙고, 주님께서는 욥에게 모든 것을 더 크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행복을 여는 교회의 모든 가족들은 주님의 참제자가 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한국 가사원장 이경준 목사님의 칼럼을 읽으면서 담목인 제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과연 내 인생에 그것이 무엇이든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신 사람인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사람인가?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진정 자유롭게 살고 있는 사람인가?” 그런데 그 무엇 하나에도 확실하게 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치고 할수만 있으면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고 있다라고는 말할 수 있어도 단호하게 그렇게 살고 있으니 나를 본받으세요라고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주님은 우리를 100% 의인으로 부르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예수님을 통해 의인으로 삼아 주셨지만(칭의) 또한 100% 죄인이기에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너무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주님께 하듯 <최선>이라는 걸 알게 해 주셨을 때 그나마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아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경건과 그리스도인의 품위(단정)를 잃지 않으려는 제자도가 자연스러운 영성이 되도록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인가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

모든 일에 사랑!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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