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674호> 2022. 11. 20
“시선 집중”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을 때 저는 사진 작가와 함께 사진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목회자들이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서 매월 한번씩 함께 모여 식사 교제를 하면서 사진 찍는 기술을 하나씩 전문가에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요즘엔 주제와 부제를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카톡,페북 등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초점을 잃은 사진이 많습니다. 그냥 얼굴이 보이고 자연이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진작가는 자신이 찍고자 하는 사물에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을 때까지 렌즈에서 시선을 떼지 않습니다. 사물이 말을 걸어오는 순간까지 기다리며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그래서 좋은 작품은 작가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목회 현장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목회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목자목녀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사역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같은 죄인에게 주님의 소원을 마음에 품고 목회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시선이 머문 곳에 내 시선이 머물 수 있도록 함께 격려하며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결국 기도하다가 내 시선이 멈춘 곳, 말씀 묵상하다가 내 마음을 사로 잡은 그곳이 내 목회 현장이 되고 사역의 현장이 됩니다. 우리의 사역은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 가에 따라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인다고 아무 생각없이 시선을 고정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요즘에 이것이 유행한다고 시선을 돌려서도 안되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볼 것인가?”,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보게 하시는가?” 자꾸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시선이 사역의 방향 뿐 아니라 사역의 퀄리티까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목회 현장을 바라 볼 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보이는 것’은‘보이지 않는 것’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 시선이 멈출 때 감춰진 것들의 베일이 벗겨지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해 보면 겉모습은 미남, 미녀인데, 그 인격은 상처투성이요, 분노조절 장애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면을 보는 시각을 훈련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표면만 바라보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됩니다. VIP를 만났을 때 2초의 시선과 2시간의 시선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2초의 시선은 첫인상을 느끼게 할 뿐이지만, 2시간의 시선은 기도의 자리에서 그 영혼의 목마름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시선이 머문다는 것은 우리의 목회 현장에 ‘집중력’을 가져 오게 합니다.
또한, 우리의 목회 현장에 예리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한 것을 볼 줄 아는데 그것이 바로 ‘통찰력’입니다. 영혼구원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에게 통찰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목회에 어려움이 생기는 이유를 살펴보면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시선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집중력의 부재요, 통찰력의 부재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시선을 놓친 이유는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다 초점이 문제입니다. 성경대로 목회한다고 하면서 아직도 프로그램을 즐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코람데오’ 정신을 상실한 분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가정교회 목회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착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가정교회 목회를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정교회 목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대로 하는 목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도 쓰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종종 미술관에 가서 대가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집니다. 작품 하나에 나를 압도하며 끌어 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끄는 힘이 작품에서 느껴집니다. 그래서 대중들의 시선을 멈추게 만드는 작품들은 명품이 되고, 명작이 됩니다. 작품이 아무리 거대하고 웅장하고 화려해도 사람들이 눈만 깜빡이고 지나가 버린다면 그것은 졸작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하는 명작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시선을 훔치는 일은 작가의 땀과 노력과 깊은 내공이 쌓인 결과입니다. 목장을 보려고 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목장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진짜입니다.
허상이 아니라 진짜 가정교회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국 머무름은 시간 싸움입니다. 쫓기지 않아야 묵상할 수 있고 머무를 수 있습니다. 머무를 때 다초점이 하나의 초점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의 목회 현장은 결국 ‘시선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선이 모이는 곳에 영혼구원의 풍성한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목회 현장에서 하나님의 소원을 보는 것, ‘가정교회’를 보는 것이 실력이고 수준이 됩니다. 성경대로 목회하려고 말씀에 시선이 머물수록 더 깊어지고, 기도의 자리에 시선이 멈출수록 더 멀리 보게 됩니다. 그런데 시선 고정이 안되면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목회하다가 미로에 빠지지 않으려면 ‘신약교회 회복’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고 고정시켜야 합니다.
주님이 주목 하시는 곳, 주님의 시선이 머문 곳, 그곳이 바로 우리가 목회 해야 하는 동기가 되고 사역의 전환점이 됩니다. 가정교회 목회의 헌신과 섬김과 희생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파워가 있습니다. 혹시 연말을 맞이하면서 방황하고 있다면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기로 다시 결심하면 좋겠습니다^^
(대양주 가사원장 강승찬 목사님의 칼럼을 읽으면서 담목인 제 자신과 우리 목자목녀님들, 그리고 연합교회 사역을 하는 모든 사역자들이 다시금 새겨야 하는 말씀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성(관용)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