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669호> 2022. 10. 16.
“의미있는 외로움”
예수 믿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려면 외롭다는 느낌이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세상 가치관"이라는 법 하나를 근거로 살기 때문에 막 살기로 작정하면 별로 갈등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법 하나를 근거로 살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냥 살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게 되면 "하나님 나라의 법"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근거로 살기 때문에 시작은 오히려 혼돈스럽고 인간의 좌성과 부딪치는 어색한 갈등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감각적으로 느끼면 신비한 감사, 기쁨, 평화, 인내, 절제 같은 새로운 즐거움, 기분 좋은 인생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합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한인들도 별로 없고 선택할 교회도 다양하지 못합니다. 이미 세상의 변질된 교회에 익숙해 진 교인들이 주류가 된 현실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키우기에 적합한 교회를 선택하려는 사람보다, "사람" 앞에서 감투를 쉽게 쓰고 자기 중심적인 만족을 위한 교회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더구나 자신을 희생하고 손해보며 억울한 이야기도 들어가며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다는 사명을 체험적으로 느끼는 데는 내적, 그리고 외적으로 수많은 방해와 공격을 견뎌내야 합니다. 교회 주보에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신 성도님은 연약한 교회를 섬겨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넣기까지 거의 10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만큼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고,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라는 진리를 체험적으로 연습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자존심과 기득권을 위해 교회를 다니면서도, 정작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오류 속에 쉽게 빠지곤 했습니다. 이론으로 아는 것과 체험으로 아는 것이 얼마나 거리가 먼지,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나서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정교회를 사랑해 주셔서 어느 정도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하나님의 마음이 녹아내리면 그 교회는 영성이 밝아지고 서로 세워 주려고 하고,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일이 뭔지, 체험적으로 알고 연습하는 아름다운 교회로 변화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때때로 사람 간에 갈등이 있고 오해가 있어도,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고, 그 문제를 어떻게든 함께 잘 회복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 제 마음 깊이 박수를 보낸 적도 많았습니다.
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정말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려면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손해"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는 "이익과 상급"을 누리게 되는 길입니다.
실제로 생업을 정하지 못해서 고생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돈이 된다고 아무거나 할 수 없다는 믿음의 기준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픈 마음으로 기도해 드립니다. 교회를 떠나지 않으려고 월급도 적은 직장을 일부러 선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매일 가는 직장은 오히려 먼데, 교회 근처로 이사오신 형제자매님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사명에 근거한 결정들입니다. 참 자랑스럽고 또 목사로써 고마운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결정들은 즐겁기도 하지만 한편 세상적으로는 외로운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아주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필요와 다양한 영성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된 공동체 입니다. 그 다양성이 장점이 되려면 더 많은 인내와 희생과 섬김이 필요합니다. 가정교회 하는 교회 공동체마다 앞에 서 있는 지도자들에게는 외로운 싸움을 더 많이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과와 열매를 믿음으로 보고 사는 즐거운(?) 외로움, 의미 있는 부담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이곳 저곳에 서 가는 모습에 감사와 기쁨과 찬양이 있습니다. 파이팅!
위의 북미 가사원장 김인기 목사님의 칼럼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 가운데도 이런 의미있는 외로움을 기꺼이 감당하는 분들이 계심을 보게 됩니다. 주님과 교회 때문에 좀더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기본과 원칙을 고수하면서 정직에 도전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 우리교회는 여기까지 왔다고 믿습니다. 담임목사로서 저 역시도 지난 시간들 속에서 나름 외로움과 싸워야 했고, 지금도 그런 부분이 없진 않지만 담임목사의 영적인 리더쉽을 믿고 순종해 주고 곁을 내준 평신도 지도자들이 있기에 나름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몸된 우리 교회를 위해 뭔가 결단하고 재헌신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있는 외로움을 경험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영성이 되고 생활화된 헌신이 되기까지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의미있는 외로움을 주안에서 잘 견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외로움은 돌이켜보니 나 혼자 내동댕이쳐진게 아니라 주님이 순간순간 함께 하셨다는 것을 경험하기에 그것은 두려움에 앞서 더욱 의미있는 간증이 될 것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