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655호> 2022. 7. 10
“성도를 적으로 만드는 담임목사의 리더쉽”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가정교회 세 축의 가장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담임목사의 리더십입니다. 원래 가정교회의 세 축을 처음 그렸을 때는 세 축이 지금처럼 평면도가 아니고 삼각뿔의 모습이었습니다. 밑면에 있는 세개의 꼭지점이 각각 연합예배/삶공부/목장모임이고, 꼭대기에 있는 뿔의 꼭지점에 담임목사의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렸던 이유는 삼각뿔에서 밑면의 삼각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위에 있는 뿔의 꼭지점인 것처럼, 그래서 위의 꼭지점이 힘을 잃을 때 밑에 있는 나머지 세 꼭지점이 흩어져 버리는 것처럼, 담임목사의 리더십이 없으면 연합 예배/삶공부/목장 모임의 통일성과 연계성이 사라질 만큼 리더십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가정교회에 있어서 담임목사의 리더십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리더십을 관찰해 보면 리더의 행동 가운데는 성도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리더십이 있는 반면에, 반대로 성도를 적으로 만드는 리더십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성도를 적으로 만든다면 그것을 리더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지만 그것도 분명 리더의 한 모습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도를 적으로 만드는 리더십에 대해서 생각을 좀 나누어 보겠습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제가 훌륭한 리더십을 소유한 사람이라서‘ 이런 리더십을 소유하십시오’하고 드리는 말씀은 절대 아닙니다. 저 역시도 자주 성도를 실망시키고 적으로 만드는 사람임은 틀림없습니다.그래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해 보게 되기 때문에,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정리하는 마음으로 쓰는 글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성도를 적으로 만드는 리더십이 만들어 지는 첫 번째 이유는 리더가 가지고 있는 경쟁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경쟁 사회에서 태어나고, 오랫동안 경쟁을 훈련받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쟁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특별히 학교를 끝낸 후에는 대기업에서 15년을 일하면서 경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훈련받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가 가진 경쟁심은 우선 대화를 주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경쟁적인 사람은 남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하고, 따라서 어디에 있던지 대화를 주도합니다. 이런 사람은 기본적으로 아는 것이 많고, 따라서 누가 무슨 이슈를 얘기하면, 그 즉시로 더 많은 다양한 정보를 내어 놓아서 주도권을 가져 오던지,아니면‘ 그런 것이 아니고 이런 것이다’라며 반박하고 정정해 줍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닫게 하고 우리를 적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잘 알면, 혼자 잘 해 보세요’하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런 성향이 있는 사람은 일단 본인이 많이 알고 있는 것을 과시하지 않도록 하고, 대화를 주도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고, 목사가 꼭 나서야 하는 일, 즉 말씀과 복음과 진리에 관한 일에서 입장을 분명히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라면 다른 사람의 얘기에 토를 달거나,부정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고 동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경쟁심이 있는 사람은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마음에 안 들고,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보다는 부족한 것이 먼저 보입니다. 일을 시키면 믿어주지 못하고 참견을 하게 되고, 잔소리를 하게 되지요. 물론 일이 잘 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것이겠지만, 이런 태도는 당연히 다른 사람을 적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하는 마음이 들면서 손을 놓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일단은 일을 맡기고 나면 믿어 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되든지 그냥 맡길 수는 없는 법이니 참견해야 할 때는 본인이 일한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그들의 의견을 수용해 주고, 수정이 필요할 때는 일한 것에 충분한 칭찬과 인정이 선행된 후에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점은 목회적인 차원에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고, 자주 고마움을 표현해 주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성도를 적으로 만들지 않고 성도들이 가능하면 나를 도와주고 싶어하고, 내편이 되고 싶어 하는 목회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나에게 깊이 스며있는 경쟁심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치료제는 칭찬입니다. 남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면서 경쟁심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남이 잘 해서 부러울 때는 더 많이 칭찬하는 것입니다. ‘참 잘했다,좋아 보였다,나도 많이 배웠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부럽다’라는 말을 하면서 진심으로 상대를 칭찬할 때 우리 안에 있는 경쟁심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성도를 적으로 만드는 리더십이 만들어 지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기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내가 시기심을 느낄 때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가 알 것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던지,듣고 싶지 않다던지, 아니면 얼굴이 굳어진다던지 등등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은 시기심이 있을 때, 우리는 쉽게 남의 공로를 가로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공로를 자기가 한 것처럼 한다든지, 상대방이 한 공로를 충분히 인정해 주지 않는다던지, 아니면 내가 한 부분만을 부각시키고 나머지는 무시한다던지 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분명히 성도들은 섭섭하게 만들고 결국은 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시기심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치료제는 섬김입니다. 섬김을 반복해서 연습해서 섬김이 몸에 배도록 할 때 시기심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육체적인 섬김을 넘어서 다른 사람을 성공시키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높이는 섬김을 실천해 갈 때 우리 안에 있는 시기심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성도를 적으로 만드는 리더십이 만들어 지는 세 번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어서, 그것으로 인한 일정한 좋지 않은 행동 패턴이 만들어져 있을 때 그것이 성도를 적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상처는 우리에게 나만의 방어기재를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일이 생기면 일단 자리를 피한다거나, 무조건 좋게 좋게 자리를 모면하려고만 한다거나,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을 때,아니면 반대로 화를 내는 등의 공격적인 성향으로 나온다거나 하는 내가 불편한 어떤 사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방어기재가 있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이런 방어기재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망하도록 만들고, 그 사람을 떠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물론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상처들이 지금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것 같고, 특별히 위기가 닥쳤을 때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반복해서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를 적으로 만드는 리더십이 만들어 지는 네 번째 이유는 내가 가진 열등감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 가운데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없겠지만, 다들 어느 정도의 열등감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등감은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핑게과 책임 회피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히 일이 잘못되었을 때 핑게를 대거나, 내 잘못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이다 라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비난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성도를 실망하게 만들고 적으로 만들지 않나 싶습니다.
얼마 전에 ‘이태원 클라스’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5-6명의 언더독들이 모여서 부도덕하지만 성공한 일류 기업가와 싸워서 결국 승리한다는 스토리인데, 극중에 사장인 주인공이 반대하는 어떤 일을 메니저가 해 보자고 우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반대끝에 주인공이 메니져에게 자신있냐고 묻고는 ‘나는 안 내키지만 네가 자신있어 하니 해 보자’하며 일을 추진하는데 결국 그 일로 망하게 됩니다. 메니저가 풀이 죽어서 ‘죄송해요, 나때문에..’하자 주인공은 대뜸 ‘내가 사장이야. 하자고 결정한 사람은 나야. 넌 책임없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럴 때 늘 ‘내가 하지 말자고 했는데…’라고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만약 리더가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성도는 평생 그 리더에게 충성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리더로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고 내가 책임을 질 줄 아는 그런 리더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리더에게 실망을 느낄 때 사람은 그 공동체를 떠나고 싶어합니다. 물론 시험을 이겨내야 하는 것은 성도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들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목회자는 성도를 시험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마18:6-7).
(목자의 목자인 담임목사만이 아니라 목장의 목자목녀나 교회학교의 교사, 초원지기 및 중직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인 것 같아 국제가사원장 이수관 목사님의 칼럼을 옮겨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