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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573> 2020. 12. 13.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가정교회를 통한 신약교회 회복을 추구하는 교회들이 점점 확산되어서, 현재 가정교회사역원(가사원)은 국제 가사원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 가사원, 북미 가사원, 대양주 가사원 등 세 개의 지역 가사원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대양주 가사원은 올해 새로 세워졌는데, 강승찬 목사님이 초대 대양주 가사원장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왜 감사해야 하는가?”에 대한 강 목사님의 좋은 글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원문이 길어서 약간 편집했습니다. 코로나19 가운데 <1212 임직식>을 은혜가운데 마치게 되면서, 임직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행복가족들이 감사를 통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목회 현장에서 붙잡아야 할 중요한 단어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과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닫힌 VIP들에게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주간에 있었던 감사한 일을 한 가지씩 나누겠습니다하고 목장모임에서 나눔의 시간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재난시대를 맞이하여 감사의 고백이 쉽지 않습니다. 감사하고 싶은데 성도들이 직장을 잃기도 하고, 대면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 되거나, 시시각각 변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재 확산 소식과 정부의 방역 방침의 변화로 인해 스트레스가 더 심해져서 그런지, 한 주간의 목회현장을 되돌아보면 감사의 흔적이 좀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감사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불평일까요? 원망일까요? 아니면 무관심일까요? 기도의 자리에서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식사대접을 받게 되면 누구나 대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감사를 표현하지만, 날마다 밥을 해주는 아내에게 날마다 고맙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아내에게 진정으로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내가 밥 해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를 상실해 버린 이유는 당연함으로 여기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당연함''특별함으로 바꾸어야 일상에서 감사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연함을 보석 같은 특별함으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삶을 관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의 삶은 일상의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꾼 삶이었습니다.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대할 때 황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벨론의 총리가 된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 다락방에 들어가서 매일 반복하던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를 3번씩 드렸는데(6:10), 이 기도의 핵심은 '감사였습니다.

 

감사는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처럼 내가 손해보고 힘든 상황에서도 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다니엘처럼 감사를 나에게 영적으로 체질화시켜야 합니다. 가정교회 3축이 감사가 체질화되도록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성도들이 간증할 때 감사를 고백하는 것을 보면 여지없이 가정교회 3축을 형성해서 인격의 변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분들임을 목격하게 됩니다.

감사가 체질화된 다니엘은 이 감사기도 때문에 사자 굴에 들어가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 했지만, 천사의 도움으로 사자 굴에서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비난과 불평이 가득한 세상에서 감사를 통해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감사는 우리의 믿음을 지키게 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해냅니다. 감사는 내 시선이 아닌 주님의 시선으로 인생의 시련을 바라보게 돕는다는 것을 기도할 때마다 느낍니다.

불평과 원망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발생하지만, 감사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감사는 우리를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여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다니엘은 감사를 통해 늘 깨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교부인 크리소스톰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감사하지 못하는 죄라고 말했고, 마르틴 루터는 마귀는 항상 원망하고 불평할 뿐, 마귀의 세계에는 절대 감사가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감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사단이 원하는 불평을 선택했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불평은 나를 영적으로 잠들게 하고 깨어있지 못하고 영적 게으름에 빠진 내 모습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큰 황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보다 진정한 감사를 제물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69:30-31)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감사가 우리 인격에 체질화되어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꾸어 목장모임 때마다 감사를 더 많이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를 고백하는 성도들과 목장모임이 하나 둘 더 늘어간다면 코로나 재난시대에 그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며 교회의 존재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이 늘어날 것이고, 가정교회는 건강하게 세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상황을 잘 분별하고 감사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지혜를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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