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543호> 2020. 5. 17.
내가 왜 죄인인가요?
‘내가 왜 죄인인가요?’ 교회에 발을 들이기를 꺼려하는 VIP분들이 초대를 거절하면서 곧잘 하는 말입니다. 사실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신이 죄인이다’라는 말처럼 듣기 거북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름 선하게 살려고 애를 써 왔고, 남을 도우며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것이 목표인 사람에게 다짜고짜 죄인이라고 얘기하니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인간이 죄인이라고 할 때는 그 보다 더 깊은 내면에 있는 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깨끗하지 못한 존재라는 것을 압니다. 대놓고 얘기하기는 거북하지만 내 안에 있는 이기심, 질투심, 미움, 음란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숨기고 있는 거짓됨 등 우리 안에 숨겨진 죄성은 때로는 나 스스로가 믿고 싶지 않을 만큼 많습니다. 그런 죄성은 보통 컨트롤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럴 줄 몰랐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2차 대전 때 유대인 대학살을 기획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 같은 사람은 정말 악마 같은 존재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전쟁 전후의 그는 친절하고 선량한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서 한 말입니다. 재판에 참석했던 한 사람은 ‘나도 그와 똑같은 사람이고, 나도 똑같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자신이 두려웠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죄성을 지적하는 이유가 ‘너는 죄인이다’라고 죄책감을 심어 주려는 것도 아니고, 또는 벌을 주고 싶어서 그러시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불행하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와 관계를 회복하려고 손을 내미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분 자체가 한 없이 깨끗하고 고결하시기에, 죄를 가까이 할 수 없고, 인간에게 가까이 오실 수 없으십니다. 그런데 어렵게 어렵게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인간이 ‘내가 왜 죄인이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된 인간을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시지만 오실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모든 일을 다 하셨고, 우리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우리가 ‘내가 왜 죄인이야?’ 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는 의외로 ‘알고 보니 내가 죄인이네요’ 하는 그 한마디에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봅니다. 의로움으로 의기가 양양하던 어떤 사람이 의외로 쉽게 무너지는 자기를 발견했을 때 ‘나도 어쩔 수 없군..’ 하는 그 한 마디가 주님을 만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서 살던 사람이 안 풀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풀이 죽어서 돌아오는 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 그 한 마디가 주님을 만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즈음 같은 사태를 맞아서 염려가 되고, 자신이 없고, 인생이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는 음성이 느껴지시거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나약함의 고백이 주님을 만나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