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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 8기 성료 감사

(9 미얀마목장) 손경순 권사, 2021725

안녕 하세요?

저는 중보기도부 부장과 9교회 미얀마 목장을 섬기고 있는 손경순 권사입니다. 이번 중보기도 8기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자 합니다.

얼마전 저에게 칠형제중 넷째요 집안의 장남인 남동생을 떠나보내면서 큰 남동생과 저는 9살 차이로 동생을 업어서 키우다시피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남동생은 누나들 셋 틈에서 커서인지 누나들을 고등학교 다닐때까지 언니라고 부르기도 하고 유난히도 큰누나인 제게 잘해 주었고 부모님에게는 둘도 없는 그야 말로 효자였던 동생을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힘들어도 힘든 내색 한번 안하던 동생은 작년 가을부터 두통과 허리통증 손목이 아프다며 이병원 저병원 다니면서 허리 수술을 하는등 했지만 통증은 지속되고 손목은 터널 증후군으로 의정부 개인병원에서 수술을 하려 했을 때 수술보다 중요한게 신장이 나쁘니 큰 병원으로 가서 하루빨리 검사를 먼저 받으라고 했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일산에 큰 병원들이 있으니 불편 하더라도 누나네 있으면서 검사를 해 보자고 했습니다.

올해 223일 그때만 해도 가벼운 증상일거란 생각 이였는데 일산병원에서 여러번에 검사를 통해 손목터널증후군 보다 다발성혈액골수암으로 통증이 심할수있다라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진단을 받고 98%가 맞지만 100% 조직 검사를 해야 하는데 일산병원은 없으니 큰 병원을 하루빨리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국립암쎈타에 의뢰를 하고 312일 응급실을 가던날 오전 8시에 병원 가기전 교회 들러서 담임목사님에 기도를 먼저 받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였더니 동생은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동생에게 예수님을 영접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동생은 잘 모른다는 대답을 하였지만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나오면서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싶은 간절함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우린 아무런 말도 없이 응급실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입원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조직 검사결과 100% 다발성 골수종 진단이 나왔고 코로나 시대에 당연히 통합 병실로 가는줄 알았는데 혈액암 환자는 간병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기에 그럼 남을 쓰기보다는 누나가 함께 있는 것이 동생에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제가 하던 요양보호사 일을 그만두고 동생을 간병하기로 하였습니다.

1인실에 밤10시에 입원을 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매일먹는 항암제와 일주일에 두 번 맞는 항암주사로 치료를 하기 시작하였고 액스레이 사진을 통해 허리와 갈비뼈사이 다섯군데 골절이 되었는데 콘크리트 시술을 통해 통증이 사라지면서 걷는것도 힘겨워 했던 동생은 회복이 되는 기쁨을 첫 번째로 누리며 두 번째 손목 통증도 사라지고 희망이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도 경증이니 잘먹고 운동하면 혈액암도 좋아질거란 희망에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후 퇴원해도 되겠다는 말에 너무 기뻐하며 퇴원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기쁨도 잠시 입안이 헐어서 먹지를 못하고 입안이 치료되고 퇴원준비를 하면 또 다른 곳에 목이굳어 가는등 다리에 마비로 걷지 못하는 실망스러움으로 좌절했다 일어서기를 반복 하면서 퇴원이 네번이나 미뤄지다가 42일 만에 퇴원을 하는 쾌유도 맛보게 하셨습니다.

퇴원하던날 몸보양만 잘하면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누나 수고 했다며 커피솦으로 가서 커피를 사주고 살이너무 빠져서 목이 흉하니 목이 올라오는 옷을 사야겠다며 이마트에 가서 목티와 남방을 사는등 퇴원하는날 암 요양병원을 둘러보며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한 육개월은 매형과 낚시나 다녀야겠다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퇴원을 해서 3일쯤 되었을 때 목덜미가 붓기 시작하는데 하루가 눈에띄게 크기가 달라지는 거였습니다. 2일후면 일주일에 한번씩 항암주사를 맞는날이니 기다렸다가 가자고 해서 진료당일 가게 되었는데 주치 선생님이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이런 증세가 보일때는 바로 왔어야 했다면서 퇴원5일만에 다시 재입원을 해야 했습니다.

다행이 다음날 입원실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목사님께 재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 드렸더니 입원 하기전 오시겠다며 목사님도 외부에 다녀오시던 길이라 동생이 CT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오셔서 예수님 영접기도를 해 주시면서 동생에게 다음에 교회에 와서 간증을 하라고 하시니까 그러겠다며 마치 우리교회 교우라도 된 것처럼 친근감을 보이면서 누나네 담임목사님은 다른 목사님들 같지 않다며 살갑게 얘기를 하고 주일에는 병실에서 주일 예배도 함께 드리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에 두번 항암주사와 방사선치료를 병행하면서 치료하던중 일주일이되던 54일에는 너무 통증이 심해서 매일먹는 마약진통제와 4시간에 한번 맞아야 하는 주사 진통제를 한시간에 한번씩 2회를 맞고도 통증이 가라않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맞는 몰핀을 맞고도 견딜 수 없으니까 새벽 2시에 누나 말씀이던지 찬양 이던지 좀틀어 달라고 하여서 50분짜리 은혜에 찬양을 틀어 주었는데 찬양을 듣던 중 잠이 들었습니다.

동생 앞에서 눈물을 보일수가 없어서 화장실에 가서 펑펑 울다 나오기를 수없이 하면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기적을 기대하면서도 주님이 뜻하시는 것이 아닌 동생을 한번만 살려 달라는 저에 이기적인 기도가 더 많았습니다.

처음 입원 했던 병동은 대장암 거의말기암 환자들이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기전 환자들과 지내면서 잠을 잘수도없고 밥도 먹지 못하는환경 이였다면 재입원을 한 병동은 혈액암 환자들이 재활을 통해서 359년된 환자들이 항암 치료를 받기위해 일주일씩 단기 입원 환자여서 분위기는 희망이 보이는 병실 이였기에 잠도 어느정도 잘수 있었고 밥도 먹을수 있어서 먹고 싶다고 하면 장영용 목자님에게 부탁을 해서 거에 메일 외부 음식을 통해서 먹는 즐거움도 느끼고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병실냉장고를 채우는등 날마다 감사였습니다.

동생과 하루 세번 식기도중에는 아침기도시간에는 지난밤 통증을 견디게 해주셔서 감사 오늘 시작하는 하루 동안에도 무슨일이 일어 날지 모르는 가운데서도 염려와 두려움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날마다 하나님이 동행 하시는 가운데 천국에 소망을 바라보며 마음에 평안을 주시길 기도하면 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아멘을 하면서 요즈음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멋쩍어 하기도 했지요.

유트브를 통해서 말씀과 찬양을 찾아서 두 세 시간씩 듣기도 하며 찬송가 88장 내진정사모하는 찬양이 나오면 잠깐 어머니와 함께 온가족이 교회다닐 때 가족찬양으로 부르던 곡이라며 또 눈물를 흘리고 그렇게 우리 둘이는 울기도 만이 하면서 제가 아플 때 만난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서 동생에게 엄습해 올지 모르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해지기 위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하였으며 동생에게 천국갈수 있다는게 믿어지냐며 누구로 인해서 갈수있는지 물으면 동생의 대답은 언제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갈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몰핀주사을 맞기 시작한지 열흘쯤 되었을 때 동생은 호흡이 안되어 산소 호흡기를 시작 하였고 산소호흡 하루만에 자가호흡이 어렵다며 중환자실에 가서 기도수술을 하면 호흡이 편할거란 의사에 말에 동생은 중환자실은 안 간다고 하였으나 저는 단순한 수술이라 생각되어 동생을 설득시키면서 기도수술만 하면 병실로 올라 올수 있다는 기대감에 중환자실을 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인공 산소호흡기를 한지 4일 만에 자가 호흡 50%을 했다면서 기도 수술을 하면 이틀 후에는 일반 병실 로 갈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동생이 중환자실에 온지 몇일이나 되었냐고 묻기에 4일이 되었다고 하니까 그거밖에 안되었는데 무척 오랜시간이 간거 같다면서 누나 나 어제밤에 기도를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막내 여동생 결혼식이 519일 이였는데 결혼식이 몇일 남았냐고 묻길레 이틀 남았다고 했더니 내가갈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축의금을 100만원 해주라고 유일하게 살아생전에 중환자실에서 3주 있는 동안에 301회 면회시간을 통한 30분 대화가 전부였습니다.

기도수술에 대한 기대도 잠깐, 암은 온 장기로 다 퍼져서 신장이 나빠서 신장 투석을 해야 했고 간은 해독할 능력이 안되 황달이 왔으며 페에도 물이차고 페렴으로 손을 쓸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의사들은 마지막을 예고 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코로나로 중환자실은 하루 한사람 30분만 면회가 가능 했기에 눈빛만 봐도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기에 저만 계속 면회를 하고 형제들이 오면 누가 밖에 와 있다고 애기만 전해주곤 하였는데 어느날 목사님께서 그러지 말고 형제들과 자녀들도 돌아가면서 다 만나보게 하라고 귀뜸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힘들었지 라는 말은 하지말고 고맙다 사랑한다. 동생이여서 누나여서 아빠 아들딸이여서 행복했노라고 좋은 애기만 하고 좋아했던 말씀 구절과 찬양을 틀어주고 좋았던 추억을 이야기하라며 조언을 해 주셨는데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던중 제가 마지막으로 면회를 하던날 가족들이 가까운 곳에서 대기를 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병원측에 말에 형제들이 저희집으로 모였고. 6시즈음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20분 안에 도착 할수 있느냐는 급한 물음에 되도록 가겠다고 하고는 목사님에게 연락을 드리고 중환자실에 갔더니 임종이 다된거 같다며 보호자와 유족 한명만 들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아들인 조카와 함께 들어가서 천국에서 만나자며 사랑에 인사를 하고 동생은 올케와 7년전 가정사로 별거 중이였는데 그래도 올케에 대한 애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올케를 용서 해주라며 용서해주는 대리기도를 하였는데 바로 숨이멋을 것 같았던 동생에 눈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고용량 산소호흡기로 인한 손과 다리 피부가 괴사되어서 호흡기를 떼겠다고 하였고 2시간쯤 지났을 때 동생을 못 본 형제들이 많은데 한번 볼 기회를 주면 안되겠냐고 물으니 가족들에 마음은 너무 잘 아는데 코로나로 예외 없이 1인만된다는 예기를 반복했는데 20여명이 중환자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 모습이 딱해 보였던지 팀장이란 분이 나와서 딱두사람만 들어오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병원을 떠나지 말고 연락을 하면 바로 올수 있는 5분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서 의자도 없는 중환자실 밖에서 밤을 세며 계속 기다린 결과 어머니와 아들딸 형제들 30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종사촌까지 보고싶은 사람을 다 만나고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531일 영시 42분에 온가족이 다모인 자리에서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하나님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동생이 우리교회는 나오지 못했지만 살아생전에 좀 건강 해지면 교회에 가서 간증을 하겠노라고 하였으며 담임 목사님을 특별히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지막을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장으로 그 먼거리를 새벽부터 늦은시간 까지 많은분들이 참석하셔서 목사님의 입관예배부터 시작하여 초원지기 장로님의 위로예배 인도와 목사님과 몇몇 교우들이 천국환송예배 장지와 납골당 끝까지 기도와 사랑으로 함께해주신 행복가족들과 은혜가운데 모든 장례 절차를 순적하게 마칠수 있도록 기도와 사랑으로 인도하신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행복가족들에게 감사드리며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고 전적인 하나님에 계획하심 속에 한 영혼을 위한 주님에 사랑 이였음을 깨닫게 하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가족에게 오월은 519일은 막내 여동생 51세에 늦은 결혼식을 하는 기쁨과 531일은 큰남동생이 58세에 짧은 생을 마감하는 슬픔 기쁨과 아픔이 공존하는 시간속에 역사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두 달을 간병하는 동안에 동생 컨디션에 따라 제 기분도 좌지우지 했던지라 하루잠은 두세시간이면 족 하였고 밥을 먹을 수 없어 제일 실어하는 컵라면으로 한끼나 밥을 물에 말아야만 먹을수 있었던 상황속에서 우리 권사님들이 찾아오셔서 힘내라고 맛있는걸 사주시고 또는 병실까지 오셔서 기도와 사랑으로 섬겨 주시는 등 동생 좋아 하는게 무엇이냐며 없는 과일을 찾아 다니면서 사다주신 권사님들 봉투를 건네주면서 남편 장영용목자님 식사가 걱정된다며 게장과 추어탕을 사다 문앞에 놔두고 가시는 등등 여러 모양으로 섬겨주신 덕분에 힘들어도 외롭지 않았고 믿음이 없는 친정 형제들에게 까지도 귀감이 되는 가족이상에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남편 장영용목자님은 제가 불편하지 않고 동생 간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불철주야로 도와주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기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46명에 8기중보기도가 너무나 큰 힘이 되었고 긴급한 기도제목을 올릴 때 마다 위기를 넘겼으며 그로 인하여서 동생하고 소중한 100일을 추억할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이며 건강한 사람에게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감사를 놓일수 있지만 제가 동생을 통하여서 절실하게 느낄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하나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하늘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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