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490호> 2019. 5. 12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시는가?
(가사원장 최영기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이 되어 옮겨 봅니다)
요즈음 혼자 있을 때 느닷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 때문입니다. 내가 살 수 있는 최고의 삶을 살고 있고, 인생 중에서 오늘이 가장 행복하다는 고백이 입에서 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행복하다며 눈물 짓는 것은 저의 본래 모습이 아닙니다. 저는 한국 전쟁 때 양친을 잃은 탓에, 어린 시절이 불우했고, 인생에 관해서는 비관적이었습니다. 장래에 대한 기대도 없었습니다.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니까 두려워서 그렇지, 긴 시간 버겁게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이 최선이 아니냐는 생각도 종종 했습니다.
결혼 생활은 반드시 이혼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5년이나 알고 지냈던 여성과 결혼했지만 결혼식 직전까지 진정으로 바른 결정을 했는지 회의를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결혼해서 아내가 내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되면 도망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 뿐만이 아니라 자녀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비관적이었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나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임종에 관한 그림은, 아내와 자녀들에게 버림 받고 작은 방에서 홀로 쓸쓸히 숨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자존감이 낮고 비관적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자녀가 되게 하셨고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사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행복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려고 작심을 하셨는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어 주셨고, 비관적인 사람을 낙관적인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두려워했던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도망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내는 아직도 제 곁에 있습니다. 저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들 딸은 아빠가 ‘존경스럽다’는 말까지 합니다. 손주들은 잦은 출타로 자주 못 보는데도, 만나면 반가워 하고 살갑게 대합니다.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역입니다. 제2의 종교 개혁이라고 불리우는 가정교회 운동에 저를 사용해 주셨습니다. 저는 극도로 내향적인 사람이라 길 가다가 아는 사람을 멀리서 보면 곁길로 피해 갑니다. 사람 많은 데 가는 것 싫어하고, 회중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러서 사용하신다는 것은 은혜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시는 것에 감격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유혹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욕구가 아예 생기지 말아야지, 일단 욕구가 끓어 오르면 이겨내지를 못합니다. 오죽하면 죄를 지어 하나님께 수치를 심어드릴 것 같으면 그 순간 제 목숨을 거두어 달라는 기도까지 했겠습니까? 큰 실수 없이 목회와 가정교회 사역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십시오.’라고 매일 드리는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경과 재난을 겪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나중에 천국에 가면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셨는지 따지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기록된 욥처럼 말입니다. 저도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따지는 질문이 아니라, 주님의 사역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 부담을 안고 왜 저를 사용하셨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러면서 가끔 머리를 스치는 의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만 이런 최선의 행복한 삶을 살게 하셨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최선의 삶을 허락하셨는데 모르고 있는 것일까?
위암 말기로 임종 직전에 있는 한 자매님을 심방한 적이 있습니다. 이 자매님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호흡을 못하기 때문에 코에는 산소호흡기가 꽂아져 있습니다. 이 자매님이 기운이 없어서 헉헉대며 띄엄띄엄 제게 한 말이 충격이었습니다. “목사님, 전 하나님이 세상에서 저를 제일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전연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자매님의 말이 이해가 안 갔지만, 그러나 이제는 조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 자매님은 고통의 순간에도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생명의 삶에서 공부했듯이,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게는 외동 딸이고 외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녀처럼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고, 주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가 모두 오늘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안 행복한 것이 아닌가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