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산칼럼 228호) 2014. 5. 4
예수님이 차려 주신 밥상
(사실 칼럼을 매주 써야하는 부담감이 적지 않은데, 국제가정교회사역원의 최영기 목사님의 원장코너에 보면 전하고 싶은 말을 대신 잘 표현해 주시는 것 같아 그대로 인용해 봅니다)
얼마 전 IVP 편집인이 ‘예수님이 차려주신 밥상(팀 체스터 저, 홍종락 옮김)’이라는 책 추천사를 써달라고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기간 안에 원고 읽을 시간이 없어서 사양했습니다. 얼마 후 시간이 생겨서 원고를 읽게 되었는데,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가정교회에서 목장 모임을 가질 때 꼭 식사를 같이 하도록 하는 이유는, 신약교회가 그렇게 했으니까 우리도 한다, 정도의 단순한 것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왜 식사를 해야 하는지 심오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복음과 식탁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먹는 얘기를 빼면 책이 얇아질 정도로 성경에는 먹는 것과 상관된 내용이 많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메시아가 와서 세울 하나님 나라를 풍성한 잔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사 55:1-2).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실 때에도 풍성한 잔치에 초대하셨습니다(요엘 2:14-27).
천국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자연세계보다 더 높은 차원의 세계이지만,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이 다 있는 곳입니다. 죄의 영향력이 사라졌을 뿐입니다. (천국에 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은 분들은 알콘의 ‘헤븐’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요약된 한국 번역판보다는 영어 원판으로) 그곳에는 직장이 있고, 친구가 있고, 음악이 있고, 여행이 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잔치가 있습니다.
식탁은 예수님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대부분 잔치 자리나 식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공적으로 이적을 베푼 자리가 혼인 잔치였습니다(요 2:1-11). 잔치를 좋아하셨던 예수님은 초청받으면 누가 초청했는지 가리지 않고 응하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대적하는 사람들로부터 세리와 죄인의 친구요, 술주정뱅이요, 식탐하는 사람이라는 비난까지 받았습니다(눅 7:34).
예수님에게 있어서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하늘나라를 가르치는 자리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자리요, 하나님의 가족 되었음을 선포하는 자리였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실 때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도 천국 잔치였습니다(눅 22:16, 30).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도, 하신 것이 제자들에게 생선을 구워 먹이시는 것이었습니다(요 21:13).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식탁은 신앙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신약 교인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먹고 떡을 떼었습니다(행 2:46). 이들은 공식 예배와 식탁 교제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거짓 교사들을 배격하고 죄지은 사람들을 징계하는 방법은 식탁에 같이 앉기를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요삼 5-8절; 고전 5:11). 식탁 교제가 중요했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들을 선출할 때에 손님 대접을 잘하는 사람을 뽑도록 했습니다(딤전 3:2).
성찬도 신약 교인들에게 단순한 예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상에 둘러 앉아 먹고 마시는 잔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것을 기억하고, 양식이 되시는 주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음을 선포하며, 장차 누릴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잔치의 자리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교인들 가운데 병들고 죽는 사람들이 생긴 이유가 성찬에 합당하게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고전 11:27-30).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상류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먼저 와서 취할 정도로 먹고 마시고 나중에 참석한 가난한 사람들은 음식이 모자라 배가 고프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성찬의 의미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이것이 바로 ‘합당하지 않게’ 성찬에 임하는 것이고 주님의 피와 살을 범하는 것입니다(고전 11:27).
진정한 가족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같이 밥을 먹어야합니다. 무숙자들에게 음식을 장만하여 배부해 줄 때 시혜자와 수혜자라는 극복할 수 없는 관계의 벽이 존재하게 됩니다. 간식을 나누든지, 식당에서 요리를 대접해도 거리감은 여전합니다. 가정집에서 밥상에 둘러 앉아 같이 음식을 먹을 때에 비로소 거리감이 사라지고, 진정한 사귐이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집에 초대하여 음식을 나눕니다.
신약 교회 성도들은 같은 식탁에서 음식을 같이 먹었기 때문에, 있는 자와 없는자, 히브리인과 헬라인, 주인과 상전 사이에 있는 장벽을 허물어졌고, 주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갈 3:28).
신약 교회 회복을 추구하는 가정교회 성도들에게 식탁은 단순히 영양 공급을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가족 됨을 즐기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장 모임은 반드시 집에서 갖고, 목장 모임으로 모일 때에는 반드시 식사를 해야합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이 우리의 삶 입니다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