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산 칼럼 384호) 2017. 4. 30
함께 하려는 것이 사랑입니다
혼자 하려는 것은 악입니다
(이번 새봄 바자회의 모든 준비와 과정, 결과를 지켜보면서 함께 마음을 모아준 모든 행복가족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다시금 우리 교회를 돌아보며 생각을 옮겨 보았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도착하시자마자 그 앞으로 달려가서 엎드립니다. “주님, 주님이 필요합니다. 밤새 기다렸습니다. 제 딸이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저희 집으로 가셔서 제 딸을 살려 주십시오.” 회당장의 믿음이 상당한 수준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믿음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간구하지만, 예수님의 방법대로 온전히 맡기기에는 아직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예수님이 자기 집까지 가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손을 얹고 안수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냥 이곳에서 말씀만 하셔도 될 것이라는 믿음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벗어나면 따라가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즉 예수님이 필요하지만 예수님에게 맡기지는 않는 것입니다.
회당장에게 있어서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자기가 받을 은혜를 가로막고 있는 자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죽어가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더 급한 일입니다. 야이로의 딸이 응급환자입니다. 사이렌을 울리면서 우선순위로 달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혈루증으로 앓았던 여인을 무리 중에 드러내어서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그러는 사이에 딸이 죽었습니다. 이때 회당장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누구를 원망하시겠습니까? 예수님도 원망하고, 혈루병으로 앓았던 여인에게는 분노를 품지 않았을까요? “너 때문이다. 네가 내 은혜를 가로채서 내 딸이 죽었다.” 이런 생각하시지 않을까요?
자기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달려온 백부장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당장에 도와주려고 일어서셨습니다. “가자, 백부장의 집으로!” 그때 백부장이 말했습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이 이렇게 대답했을 때 주님께서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내가 진짜 믿음을 만났다. 내가 제대로 된 신앙을 만났다.” 회당장도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하라 하면 하는 순종의 자세로 주님을 감동시키는 신앙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회당장이 배워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배려하는 법, 은혜를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죽어가는 내 딸이 고침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저 여인에게도 혈루병에서 치유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저것이 내 은혜를 가로챈다”는 생각에서 “저 사람도 동일한 은혜를 받아야 하는 나의 지체다”라는 생각을 배워야 합니다. 함께함이 없는 나 홀로의 신앙은 진짜 신앙이 아닙니다. 사랑을 배울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배우고, 알려주고, 사랑하는 사귐이 없는 공동체를 제자도에 헌신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함께함입니다. 신학자 브루스 윌키는, 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이고, 악이란 나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함께하려는 것이 사랑입니다. 혼자 하려는 것은 악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