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산 칼럼 363호) 2016. 12. 4
설교 안 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제 자신에게 먼저 해당되는 말씀이기에 최영기 목사님의 컬럼을 옮겨봅니다)
가상 질문을 하나 던지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갔다고 합시다. 주택 마당 한 가운데 큰 돌이 있습니다. 이 돌을 치워 보려고 팔로 밀고, 다리로 밀고, 등으로 밀고, 한 시간 동안 별 짓을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돌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일을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물리 공식에 의하면 이 사람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W=F x d, 즉 일(Work)은 힘(Force) 곱하기 거리(distance)이기 때문입니다. 힘(F)을 아무리 썼어도 돌의 위치에 변화가 없으면 거리(d)가 0이 되고, 힘(F)과 거리(d)를 곱한 일( W)은 0이 됩니다. 일을 안 한 것입니다.
이러한 물리 공식은 설교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시간을 써서 설교 준비를 하고, 열정적으로 설교를 했다 할지라도, 청중들에게 변화가 없다면 설교를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백성이 변하지 않을 것을 예고하면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시기도 했지만 이것은 예외입니다.)
가정교회 3 축인 목장 모임, 삶 공부, 주일 연합 예배는, 각각 인간의 지(삶 공부), 정(목장 모임), 의(주일 연합 예배)를 터치해 줍니다. 연합 주일 예배의 목표가 의지적인 면을 터치해 주는 것이라면, 담임목사는 주일 설교를 통하여 성도들이 결신하고 헌신하도록 해야 합니다.
결신과 헌신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변화가 없다면 그 설교는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수많은 설교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의 삶에서 변화를 볼 수 없는 것은, 교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하는지 분명한 목표 없이 설교자가 강단에 서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육학에서 변화의 영역을 크게 4개로 분류합니다. 지식(knowledge), 이해(understanding), 태도(attitude), 기술(skill)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든지,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되든지, 새로운 태도를 결심하게 되든지, 새로운 기술을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입니다.
설교자들도, 일반적으로 이 네 가지 영역 중 한 가지에 중점을 두어 설교를 합니다. 미국에서 ‘성서교회(Bible church)’라는 이름이 붙은 교회 목사들은 지식에 중점을 둔 설교를 합니다. 헬라어, 히브리어까지 동원해서 성경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노력을 들입니다. 한국 설교자들은 대부분 이해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설교자가 성경 본문을 깊이 공부하고 묵상해서 얻은 교훈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부흥사들이나 대형 집회 설교자들은 태도 변화에 목표를 둡니다. 감동적인 예화나 수사학을 동원해서 청중들을 격동시켜, 결단하고 결신하도록 합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같은 목사는 기술에 중점을 둡니다. 건강한 부부 생활을 유지하는 법,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등,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설교는 이 4가지 영역을 다 터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이 네 가지에 다 충실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네 가지 중에 주 목표를 어디에 둘지를 정해야 합니다. 회중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원하는가(지식)?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기를 원하는가(이해)? 태도가 바뀌기를 원하는가(태도)? 구체적인 삶의 기술을 배우기를 원하는가(기술)? 분명한 목표를 갖고 단 위에 서야합니다.
가정교회 주일 연합 예배의 목표가 의지적인 면을 터치해서 결심하고 헌신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주일 설교는 태도와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과 이해 부분은 간단히 다루고, 결신하고 헌신하도록 동기부여를 해주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담임 목회를 할 때에는, 주일 예배의 시간적인 제한 때문에 설교 때 지식과 이해 부분을 충분히 다룰 수 없어서, 교인들이 목장 모임 성경공부 시간에 주일 설교 본문이 쓰여진 배경과 문자적인 의미를 미리 공부하도록 하고, 주일 설교할 때에는 교인들의 태도를 바꾸고, 바른 신앙생활의 ‘기술’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변화를 가져오는 설교를 하기 원하면 설교자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설교를 듣고 성도들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냐?” 그리고 성도들의 변화된 모습을 머리에 그림으로 그리고, 이것을 단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 ‘설교 목표’입니다.
설교 목표는 설교 제목이나 설교 요약이 아닙니다. 청중을 주어로 만들어 청중이 변화되어 있는 모습을 한 문장으로 적은 것입니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한다.” “교인들이 십일조를 한다.” “성도들이 매일 기도한다.” 등이 설교 목표의 예입니다. ‘매일 기도하자’ 는 제목이지 설교 목표가 아닙니다. “매일 기도하기를 결심토록 한다”도, 암시된 주어가 청중이 아니고 설교자이기 때문에 설교 목표가 아닙니다.
설교 목표를 적는 습관은 “내가 무엇을 말 할 것인가?”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변하기를 원하는가?”로 관심의 초점을 바꾸어 줍니다.
“설교가 좋았다”, “설교에 은혜 받았다”라는 말에 설교자들은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삶에 변화가 없으면 설교를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준비할 때 기도가 필요합니다. 강단에서 설교할 때에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설교자는 성도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기 원하는지 분명한 목표를 갖고 단 뒤에 설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