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산 칼럼 362호 ) 2016. 11. 27
<성장주의>와 <교회성장>은 다릅니다
(최영기 목사님의 컬럼 중에서 옮겨 봅니다.)
국제 가사원에 회원으로 등록된 분들에게는 1년 후 교회 정보를 다시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목장 숫자를 비롯하여 변경된 사항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지난 1년간 장년 세례(침례) 준 사람의 숫자와 지난 3개월 장년 주일 출석 평균 인원을 묻습니다. 지난 1년간 세례 준 사람 숫자를 묻는 이유는 가사원 회원들에게 비신자 전도의 부담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죄성이 있어서 게을러지기 쉽고, 그러다 보면 교회 존재 목적을 잊기 쉽습니다. 그래서 영혼 구원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 이 질문을 던집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영혼 구원에 다시 집중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에 더해, 장년 주일 출석 인원을 묻는 이유는 교회의 건강도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교인 20명인 교회에서 2명을 세례 주었으면 교인 숫자의 10%에 해당하니까 교회가 건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년 출석이 200명인 교회에서 2명에게 세례를 주었으면 1% 에 해당하기 때문에 건강한 교회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교회가 성장을 해야만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 교인들의 이주가 잦기 때문에, 전도를 많이 해도 교회 성장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은 못해도, 구원받는 사람은 더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 숫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므나 비유에서(눅 19장) 열 므나를 남겼느냐, 다섯 므나를 남겼느냐에 따라 보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수치의 크고 작음으로 사역의 열매를 평가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엡 1:23).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 건강한 유기체는 자라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는 성장하였고, 로마 제국을 뒤엎을 수 있었습니다.
이슬람교나 힌두교 같이 종교적으로 폐쇄된 나라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세례 숫자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법적으로 제한을 받아서 전도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상황은 다릅니다. 법적인 제제나 핍박이 없습니다. 한국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익어서, 거둘 때가 되었다(요 4:35).”라는 상황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숫자를 묻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장’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목회자들은 ‘성장주의’와 ‘교회성장’을 혼동해서 그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장주의는 교인 숫자가 많아지는 것을 목회의 목표로 삼는 것이고, 교회성장은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교회 존재 목적에 충실했을 때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열매를 의미합니다. 교회의 질적 성숙과 양적 성장은 같이 갑니다. 서울교회 목자 목녀들이 영적으로 성숙하다고 많은 목사님들이 인정해 주는데, 이러한 성숙은 헌신적으로 VIP들을 섬겨 이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도록 돕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정교회 역사가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하고 교회 본질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습니다. 이 노력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교회를 시작한지 10년 쯤 된 교회면 본질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것을 열매로 보여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열매란, 비신자가 예수를 믿게 되는 것과 기신자가 예수님처럼 섬김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 이 두 가지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본질 회복이라는 구호 뒤에 숨어서 영혼 구원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충성하는 사람을 상 주신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마 18장). 그러므로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만큼만 남기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를 받았는데 두 달란트만 남기고, 두 달란트 받았는데 한 달란트만 남기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꾸중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