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산 칼럼 322호) 2016. 2. 21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미국 휴스톤 서울교회의 이수관 목사님의 칼럼을 인용해 봅니다)
옛 말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큼 기회가 왔을 때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보면 말할 기회가 왔을 때 안 해도 될 말이나,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거나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말을 해서 호감을 잃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도 가끔 그런 것을 느낍니다. 담임목사와 어렵게 마주친 자리, 쉽게 오지도, 또 자주 오지도 않을 텐데 딱 한마디 할 기회에서 저 말 밖에 할 말이 없었을까 싶고, 그런 의도가 아닌 것을 알기에 웃음이 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런 분은 내가 하는 말에는 언제나 두 가지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는 내가 전달하려는 내용(메시지) 이고 또 한 가지는 상대방과의 관계형성과 유지에 대한 실마리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내일 영화 보러 갈까?"라고 했다면 영화를 보고 싶다는 내용과 함께 나는 너와 영화를 볼 정도로 친하다는 의미나, 혹은 너와 영화를 볼 정도로 친해지고 싶다는 관계형성의 실마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회사 사무실에서 과장이 직원에게 커피 좀 뽑아오라고 했을 때는 커피를 가져 오라는 내용과 함께 나는 너의 윗사람이고, 너는 내 부하 직원이라는 관계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갈등은 이것을 잘 조화시키지 못했을 때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어?" 하며 기분 나빠 할 때 보면 거의 대부분 메시지 자체보다는 거기에 담겨 있는 관계에 대한 의미에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내가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말을 걸었을 때, 남편은 피곤하고 배도 고픈 나머지 "아이, 밥이나 줘!" 했을 때 배고프다는 메시지보다는 '당신은 나에게 밥이나 주면 되는 대상이다.'라는 관계에 대한 정의가 훨씬 더 기분 나쁘게 들리기 때문에 싸움으로 번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화를 할 때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과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조금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기억해야 하는 것은 메시지와 관계, 이 두 가지가 서로 상충하고 있지 않은지를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나가는 여성이 마음에 들었을 때 "저~ 시간 있으면 커피한잔 하실래요?" 하는 말이 거의 통하지 않는 이유는 가까운 사람끼리 하는 커피타임의 제의와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관계의 실마리가 서로 상충하기 때문입니다. 즉, 관계에 대한 서로의 공감대가 없는 가운데 하는 말은 무례하게 느껴지기가 쉬운 법입니다. 또 누군가에게 꼭 필요하고 좋은 충고를 해 주었을 때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서로가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도 충고의 사실 여부를 떠나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목장을 하는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목장을 하다보면 목장에 처음 온 VIP에게 이런 점을 간과하므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쪽은 아직 마음에 준비도 안 되어 있고 상대방을 경계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데, 지나친 농담을 하거나 시시콜콜한 것을 질문할 때 그것이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무례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