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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동산 칼럼 309호) 2015. 11.22





익숙해 지는 위험성

 

(국제가정교회 사역원장이신 최영기 목사님의 원장칼럼을 읽으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 옮겨 봅니다)

 

휴스턴 서울교회를 담임할 때, 잡음 없이 깨끗하게 은퇴을 하려면 은퇴 후에 교회와 재정적인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를 비롯하여 교역자가 풀타임으로12년 이상 사역하면, 1년을 한 달로 계산하여 그에 해당하는 사례금을 은퇴금으로 받고, 금전적인 관계는 완전히 끝내는 것으로 규약을 만들었습니다.

저 자신이 이 은퇴 규정의 첫 번 수혜자가 되어, 2012년 8월에 20개월 치 사례금을 받고 은퇴를 했습니다. 은퇴금은 한꺼번에 받지 않고, 20개월로 분할하여 받았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 약 3년 동안 담임목사였던 때와 똑같은 사례금을 매월 받았습니다. 그리고 20개월이 지난 금년 5월부터는 연금 신청을 해서 국가에서 받는 은퇴 연금, 교회에서 들어 준 은퇴 보험금, 예전에 직장생활 할 때 들었던 은퇴 보험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휴스턴 서울교회에서 제가 은퇴한 후에 재정적인 압박감을 받지 않고 가정교회 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3년 간 매년 5만 불씩, 총 15만 불 (약 1억 5천만 원)을 국제 가사원 예산으로 책정해 주었고, 보조 건강 보험을 들어주어 아내가 치료비 걱정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연금 외에는 고정수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어느 때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택 할부금도 다 갚았고, 자녀들은 둘 다 장성해서 재정적으로 독립했고, 하나님께서 쓸 데 없는 지출을 막아주셨기 때문입니다.

풍요라는 것이 별 것 아닙니다. 맥도날드 커피 대신에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지하철 타는 대신에 택시를 잡아 탈 수 있고, 지인들과 식당에 갔을 때 식사비는 내가 낸다고 호기를 부릴 수 있는 것이 풍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에는 집회를 사례금을 받으면 초청해 준 교회에 돌려주거나 교회에 갖고 와서 감사 헌금으로 바쳤는데, 요즈음은 받아서 사역비나 개인 용돈으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모습이 제 안에 보입니다. 말씀을 전한 교회에서 사례금을 많이 주면 목사님이 예뻐 보이고, 적게 주면 서운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풍요함을 누리고 있고, 돈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목회 초기에는 사례금을 받으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마 10:8), 사례금을 받는 것 자체가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익숙해지니까, 사례금을 많이 주느냐 적게 주느냐에 따라서 기분이 좌우됩니다.

익숙해져 버린 것 중에 또 하나가 비행기 여행입니다. 목회 초기에는 목사가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사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9 시간 이상 비행할 때 수면을 취하며 여행할 수 있도록 표를 업그레이드 해 주는 분이 생겨나서 비즈니스 클래스를 자주 타다 보니 여기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일반석을 타고 밤새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피곤하든지.

목사의 타락은 이렇게 시작되지 않나 싶습니다. 필요에서 시작된 혜택에 익숙해지면서, 누리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 되고, 기대에 못 미칠 때에는 불평하게 되고, 더 큰 혜택까지 요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고급 승용차를 사 달라고 투정부리는 목사님들이나, 교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거액의 은퇴금을 요구하는 목사님들이 이런 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은 욕심을 채우거나, 작은 거짓말을 하거나, 작은 부정을 저질렀을 때, 처음에는 살풋한 가책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죄라고 느끼지 않게 되는 것도 ‘익숙’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단 임원 선거에서 막대한 돈을 뿌리는 목사님들이나, 목회보다 교단 정치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이권 챙기기에 바쁜 목사님들이 이런 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아무리 바쁘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독대한다는 것은 새벽 기도회를 인도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개인 기도를 새벽 기도회 인도로 대치하는 목사님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기도 시간에도 목회를 구상하고 목회 스케줄을 짜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독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독대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바르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음성을 들려주시고 잘못을 지적해 주십니다. 그러나 무조건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자신의 신학적인 편견을 공고히 하는 결과만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바른 자세로 성경을 접근해야 합니다.

바른 접근이란 ‘단순한 성경 해석’ 방법입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아니라고 하면 아닌 줄 알고, 성경이 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고.’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말씀에 의하여 자신을 바꿀 각오가 되어 있을 때 성경이 진정으로 이해되기 시작하고, 말씀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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