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산 칼럼 289호) 2015. 7. 5
둘 다 잡아야
(가사원장 최영기목사님의 2014-12-05 칼럼을 옮겨봅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한지 3년 정도 되면 목장 모임을 매주 갖는 것이나, 목장 식구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안 됩니다. 목자 목녀들이 피곤을 느낀다면 VIP 전도가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가정교회 전체를 보면 개 교회 3년 정도의 단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VIP 전도가 잘 안 되는 것이 가정교회 목회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로 전환한지 3년-5년 정도 되었을 때 VIP 전도가 안 되면 교회가 정체 되듯이, 가정교회 운동도 이 단계에서 영혼 구원의 열매를 보이지 못하면 확산이 둔화될 것입니다. 아무리 신약교회 회복을 외쳐도 영혼 구원의 열매가 없으면 다른 목회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영혼 구원이 잘 되어서 교회가 성장하지 않으면, 가정교회는 로마 제국을 뒤엎은 초대 교회보다는 순수한 신앙을 고집하다가 스러진 쿰란 공동체처럼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교회 성장을 말하면 교회의 본질 회복을 저버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있지만, 교회의 본질 회복과 양적 성장은 같이 갑니다. 본질 회복을 무시하면 진정한 교회 성장이 안 이루어지고, 교회 성장을 무시하면 본질 회복이 안 됩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든다’는 교회 존재 목적을 보아도, ‘영혼 구원’과 ‘제자 만드는 것’ 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자 만드는 것을 무시하고 비신자 전도에만 집중하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유입되어도, 교회에서 얻어지는 것이 없다 싶으면 언제든지 교회를 떠날 형식적인 신자들로 교회가 채워지게 됩니다. 영혼 구원을 무시하고 제자 훈련에만 집중하면, ‘머리 큰’ 교인들만 만들어 내게 되고 새로 믿는 이가 더해지지 않기 때문에 성도 숫자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영혼 구원에 힘쓸 때에 교회 본질이 회복되고, 교회 본질이 회복 될 때에 영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신약교회를 회복하는 데에는 이 두 가지 사이의 긴장감이 있습니다. 긴장감을 무시하고 둘 중의 하나만 잡으면 진정한 신약교회 회복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영혼 구원과 본질 회복, 둘 사이의 긴장감은 신약교회를 회복하려는 목회자들이 안고 가야 할 숙명 같은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가정교회를 시도하는 이유는 오늘날 한국 교회를 지배하는 교회 성장주의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신자 비신자 가리지 않고 교인들을 긁어모아 숫자를 불리면 교회가 부흥했다고 생각하고, 교인 숫자가 많아지기만 하면 성공한 목회자로 인정해 주는 교회 성장주의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교회 성장이 아니라 영혼 구원을 추구하는 가정교회를 만나면서 교회 성장주의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맛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 성장주의를 거부하다가, 교회 성장의 의지조차 포기하면 안 됩니다. 교인 숫자는 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주하거나 대형 교회로 옮겨가는 교인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교회를 통하여 몇 명이 구원받았는지에는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자신의 교회는 성장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백성의 숫자는 더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두 달란트를 받아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이나, 다섯 달란트 받아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이나 똑같은 칭찬을 해주심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충성이라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마 25:14-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또한 므나의 비유도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눅 19:12-24). 므나의 비유에서는 똑같이 한 므나씩 받은 종들이 각각 다른 결과를 남겼을 때에, 결과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1 므나는 100데나리온, 1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 1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
이 두 개의 비유는 상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충성하는 것을 원하시지만, 게으른 것은 배격하신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 등장하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좋은 예입니다. 이 종은 주인에게서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되돌렸습니다. 이 종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주인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꾸중하십니다. 하나도 남기지 못한 것은 게으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성도들이 자신의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이 순수 복음을 전하기 때문이고,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바른 목회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름 탓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결여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다른 종들보다 적게 받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최선을 다 해 노력하여 한 달란트만이라도 남겼더라면,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과 똑같은 칭찬을 들었을 것입니다. 땅에 묻어두지 말고 은행이자라도 남기려는 노력만 보였어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꾸중은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