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산 칼럼 269호) 2015. 2. 15
교회의 존재 목적이 분명하면 평안해 집니다
(최영기 목사님의 글을 옮겨 보았습니다)
가정교회로 전환하면 좋은 점 중의 하나가 교회가 평안해진다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목자 목녀가 되어 목양을 하니까 목회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목양에 바쁘다 보니 이전에는 문젯거리가 될 수 있는 것들도 그냥 넘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갈등이 사라지고 교회가 평안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교회 존재 목적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계획할 때에 교회 존재 목적이 분명치 않으니까 분명한 기준이 없고, 분명한 기준이 없으니까 토론이 논쟁이 되어 버리고, 결국은 목소리 큰 사람 의견대로 되니까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그러나 가정교회에서는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든다는 교회 존재 목적이 뚜렷하니까, 분명한 기준이 생깁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 안 될지에 비추어 결정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소모적인 논쟁도 줄어들고,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아도 불만을 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병들어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별로 없습니다. 병든 교회를 살리려는 의도로 교회 개혁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재정의 투명화, 교회 운영의 민주화, 교회 내의 세습 폐지 등등의 슬로건을 걸고 운동을 벌입니다.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증상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증세만 다루는 것은 마치 호열자에 걸린 사람에게 해열제를 처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해열제가 잠시 열을 내리게 하지만,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열이 오릅니다.
현대 한국 교회가 병을 않고 있는 이유는 교회 존재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존재 목적을 회복할 때에 비로소 건강한 교회가 되고 병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을 교회 존재 목적으로 삼는 가정교회에서는, 일반 교회의 병폐를 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증거입니다. 분명한 교회 존재 목적을 붙드는 것은 셔츠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면 다음 단추는 저절로 끼워집니다. 마찬 가지로 교회 존재 목적을 분명히 하면 모든 문제에 자연스럽게 답이 나옵니다.
큰 교회가 좋으냐, 작은 교회가 좋으냐? 목회자들이 가끔 토론을 벌입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든다는 교회 존재 목적을 달성하는데 최적의 사이즈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시대, 지역, 상황에 따라 큰 교회가 좋을 수도 있고, 작은 교회가 좋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 분립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교회 분립을 사명과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교회 분립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분립하는 것이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교회 건축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교회 연합이나 통합을 추구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이 질문들도 교회 존재 목적에 비추어 보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데 도움이 되면 가치 있는 일이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가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건축하는 일이나 하나 되는 것 자체에 지나친 가치를 부과하여,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