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772호> 2024. 10. 13.
“신앙의 세가지 색깔”
확신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네 가지 권위의 원천이 있음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성이나 이성, 경험, 전통,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성경에 권위를 두어야 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 권위를 두면서도 자신의 성품이나 스타일에 따라 성경이나 사역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이해할 때도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완벽하게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취향이나 강한 영역에 따라 지성에 치우치거나 감정에 치우치거나 의지에 치우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조차 자신이 치우쳐 있는 지성, 감정, 의지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성부 하나님은 주로 지성적인 하나님, 성자 하나님은 주로 의지적인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주로 감정적인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부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만물을 질서 가운데 다스리고 계시는 지혜의 하나님으로 이해하여, 색깔로 한다면 자연을 의미하는 녹색으로 표현합니다. 대개 자유주의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자연보호, 사회운동을 강조합니다. 성자 하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순종하며 희생하는 의지적인 하나님으로 이해하여, 색깔로 한다면 피를 의미하는 빨간색으로 표현합니다. 대개 복음주의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희생과 헌신을 강조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하여, 색깔로 한다면 바람을 의미하는 파란색으로 표현합니다. 대개 은사주의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능력과 은사를 강조합니다.(더 알기 원하는 분이나 자신의 성향을 알기 원하는 분은 NCD에서 출판된 "하나님을 경험하는 세 가지 예술"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삼위일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신 분이지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그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모르는(또는 인정하지 않는)사람들은, 경계선을 벗어나기도 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혼합주의로 넘어가게 되고, 복음주의자들은 교리주의로 넘어가게 되고, 은사주의자들은 영성제일주의로 넘어가게 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을 알아야 하고,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주의자들 역시 성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물의 회복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성령님의 역사를 인정해야 합니다. 은사주의자들 또한 성부 하나님의 창조 계시를 알아야 하고, 예수님의 구원 계시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가정교회 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일입니다. 목회자컨퍼런스에서 사례발표를 하는 분들 가운데에도 초록색, 빨간색, 파란색 중 어느 성향이 강한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초록색과 빨간색이 강한 분, 빨간색과 파란색이 강한 분, 파란색과 초록색이 강한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강의를 하는 분들이나 코칭을 하는 분들, 육겹줄 조장이 되어 인도하는 분들 가운데에도 세 가지 색깔이 서로 다른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인도하는 분들은 자신의 색깔만 옳다고 주장을 해서는 안됩니다. 조원으로 있는 분들도 나와 인도자의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불편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틀린 것이 아니라(not wrong), 서로 다를(but different) 뿐입니다. 목자연합수련회를 하든, 지역목자수련회, 초원지기수련회, 청소년수련회, 싱글수련회를 하든 강사에 따라, 참석자들에 따라 세 가지 색깔 중에 어느 색깔이 강조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계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계선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초록색, 빨간색, 파란색을 다 인정할 수 있는 믿음과 인격을 키워야 합니다.
(한국 가사원장 이경준 목사님의 최근 칼럼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만큼 이해하고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행동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은 <선입견과 편견 덩어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적 가치관, 성경적 세계관을 갖는게 중요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중심, 성경중심의 사고를 훈련하는게 필요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새로운 삶과 확신의 삶 공부를 통해서 배우고 훈련할 수 있기에 기본 필수인 삶공부 6단계(생삶, 새삶, 확삶, 경삶, 하경삶 + 부부의 삶 혹은 부모의 삶)을 꼭 수강하며 5년차 이상 되었으면 재수강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나와 너는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 역시도 머리로는 아는데 실제 삶으로는 적용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아왔던 인간이 600억 정도이고, 현재 세계인구가 80억 정도라고 하는데 신기한 것은 나와 같은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쌍둥이 역시도 다르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이듯이 다른 사람 역시도 유일한 존재로서 각각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만나는 것인데 여기에 나와 너는 다른게 아니고 틀렸다는 선입견(편견)이 생기면 결국은 꼴불견을 낳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봐주는 것.. 존중이 되어야 존경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사람의 인격 자체를 존중하는 훈련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높은 권력과 부와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성숙한 인격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누구도 그를 존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는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는 섬기는 자가 으뜸이며 이런 예수님을 닮은 섬김을 통하여 사람은 변화되고 성숙해져 갑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