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755호> 2024. 6. 16
“가정교회에서 사모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가정교회에서 사모의 역할은 어때야 하나요?’ 연수 오시는 사모님들이 가끔 하는 질문입니다. 제가 사모가 아니니 대답이 궁하지만, 그 질문의 대한 답을 저의 경험을 토대로 아래와 같이 달아 봅니다. 저는1999년 가을에, 제가 휴스턴 서울교회를 출석한지 1년 정도가 지났을 때, 신학대학원을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때 저는 사적으로 최영기 목사님을 두 번째 뵙는 자리였기 때문에 상상도 못했던 제안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학대학원을 가라는 제안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전에는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길을 막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네가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오너라 하고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결정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제 아내의 생각은 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정색을 하면서 펄쩍 뛰었고 그날부터 일주일 동안 저를 피했고, 퇴근해 돌아오면 상에 밥만 차려 놓고는 본인은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을 정도로 완강히 반대했습니다. 당시는 제가 동기들보다 비교적 승진도 빨랐고,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있었던 터라, 그 장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실명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던 본인은 절대로 사모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가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교회는 비교적 작은 교회였는데 사모님의 역할은 그야말로 지대했습니다. 당시 사모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본인의 퇴직금을 담보하여 교회 건물을 마련하는 재정을 도왔고, 교회에서는 반주자 및 지휘자로, 주방의 총 책임자로, 그 외에도 교회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서 해 내는 분이셨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보고 들은 사모라는 위치는 자주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그런 가운데 상처를 받는 사람이었으니 본인은 절대로 못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저는 절대로 못해요, 하나님.” 하고 버티고 있는데 어느 날 아침에 하나님께서 던진 한마디는 “아니, 누가 너 더러 하랬니?”라는 말이었답니다.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전후 사정을 들어보려고 최영기 목사님을 만났답니다. ‘어떤 이유로 제 남편을 불렀나요?’하는 질문에 대한 최목사님의 답을 들어보니 ‘잘 보셨다’는 느낌이 들었고,그래서‘ 그럼 그 사람은 잘 할 것이라고 치고,저는 뭔가요? 나는 사모의 역할을 잘 할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얘기 했답니다. 그 때 최영기 목사님이 얘기해 준‘ 사모의 상(像)’이 본인의 고민을 접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최목사님의 말씀은 ‘요즈음에는 ‘사모학(學)’이라는 말까지 등장하지만, 성경에는 사모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또 ‘보통 교회에서 사모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너무 나서기 때문이지 그 반대의 경우가 아니다.’라고 하시면서, 사모는 그저 좀 더 헌신된 평신도면 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모는 본인이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은 은사가 없는데도 사모라는 이유로 사역을 하는 것도 옳지 못하고, 또 은사가 있는데도 사모라는 이유로 제외되어서도 안 되고, 모범이 될 만한 헌신된 평신도가 되면 족하고, 그 외에는 무엇보다도 아내로서 남편 보필만 잘 하고 자녀를 잘 키우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모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이라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목사님과 사모님이 한 마음이 되어서 서로 배려하고 아껴 주는 모습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늘 티격태격하고 싸우는 부모 밑에서는 불안함을 느끼고, 서로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는 안정감을 느끼듯이, 성도님들도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존중하는 담임목사 부부 밑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해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것은 가정교회 사모에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목장은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역이고,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중요한 것은 부부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모님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사모님이 목사님의 설교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모님들은 남편 목사님의 설교에 비판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비판한다고 목사님의 설교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고, 대신 그 비판은 나도 모르게 성도들에게 전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모님이 먼저 헌신대에 나아가고 헌신을 하고 기회가 오면 그 설교를 듣고 이런 내용으로 헌신을 했다고 나눌 때 그것이 분명히 성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두번째는 가정교회 사모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목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가정교회를 잘 하는 어떤 교회의 사모님이 컨퍼런스에서 사례발표를 했습니다. 그 분의 말이 남편 목사님이 가정교회를 올인하기 시작했는데 가만히 보니 가정교회의 성패는 목녀에게 달렸구나 싶더랍니다. 그래서 ‘목녀님들을 살리는 것이 내 역할이다’하고 방향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는 목장 하기 전날 장을 보아다 슬쩍 넣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목녀님들을 데리고 찜질방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어려운 얘기를 들어주고 그랬다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교회는 초반에 잘 성장했습니다. 물론 가정교회가 잘 자라고 나면 이 역할은 초원지기의 부부의 역할이 되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사모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입니다.
(최근 국제가사원장 이수근 목사님의 칼럼입니다. 참고로 현재 이은주 사모님은 두 눈을 모두 실명한 상태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특히 집 밖에는 외출을 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집안에서는 보이지않는 상황에서 감각으로 전업주부로 가사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10년 전에 저희 부부가 휴스톤서울교회를 방문했을 때에도 두눈이 보이지 않아 목녀 한분의 도움으로 저희에게 맛난 멕시코 음식을 사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래전에 최영기 목사님이 사모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해주셨습니다. <충성된 평신도가 사모이다>. 저희 교회도 이제 가정교회 전환 13년차를 맞이하면서 비로소 사모의 중요한 역할인 <목녀사역>에 집중하고자 할 때에 갑자기 싱글목자의 유고 상황이 벌어지고 꿈땅 어린이교회 사역을 여전히 존속해야해서 행복한 삶이나 회복의 삶, 확신의 삶 등등 일대일로 하는 삶공부를 통해 목녀들을 돕고 있는데 전적으로 목녀사역을 하기에는 몸이 모자를 정도입니다. 이수관 목사님이나 최영기 목사님이나 또한 성경에 어디에도 사모는 직분이 아니라 목사의 아내로서 제일 중요한 사역은 목사를 내조하는, 그것도 가장 첫째가 목사가 목회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가정을 잘 돌보는 것입니다. 전통교회에서 부교역자 사역을 할 때에 모시고 있었던 담임목사님들 모두가 사모의 교회내 사역을 제한하였기에 저 역시도 그대로 배워 교회에서 외향적으로 어떤 사역도 하지 않기를 바랬지만 교회의 형편상 부족한 부분의 사역을 이것저것 맡겼었고 또한 많은 열매도 있었기에 이제는 가정교회가 정착된 마당에 점차로 목자의 목자로서 담임목사 부부가 목자와 목녀들에게 보다 더 집중하기를 애쓰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기에 목자목녀님들은 삶공부를 통해서 우선 담임목사와 사모의 돌봄과 섬김을 경험하며 소통해 보시길 바랍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