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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720>2023. 10. 15.

 

많은 사람을 살리고 세워주는 말

 

저와 가까이 지내던, 저보다 열댓 살 어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심하게 말을 더듬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아니하면 말보다 야구 방망이로 아들을 다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아들이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고,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일 때의 일이었습니다. 저녁 9시 이후에는 게임을 하지 않아야 하는 집안 규칙이 있었는데, 어느 날 9시가 넘어서 퇴근을 했는데 큰아들이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말을 심하게 더듬으며 화를 이기지 못하여 진공관으로 된 모니터를 주먹으로 내리 쳤습니다. 진공관으로 된 커다란 모니터를 보던 시절이니까 좀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주먹으로 쳐서 그 모니터가 깨질 리가 없고, 주먹만 아플 수밖에... 그러니 화가 더 치밀어오른 아버지는 컴퓨터에서 게임CD를 꺼내어 가위로 잘라 버렸습니다.

그때가 10월말 쯤으로 기억이 됩니다. 큰아들은 집안에서 가볍게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다가, 아버지가 CD를 가위로 자른 것에 분개하여 집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10시 가까이 되도록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아내와 둘째 아들을 데리고 저희 집으로 뛰어왔습니다.

저는 이런 상담을 할 때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자주 느끼곤 합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도 않은 일인데, 저 스스로 생각을 해봐도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며 상담을 했을까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 날도 그러했습니다. 제가 그 아버지에게 던진 첫 질문은 아들이 집을 나간 것이 처음이냐?” 였습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 제가 말한 내용은, “처음 나간 애는 갈 곳이 없어서 집에 꼭 들어와.” 였습니다.두 번 이상 나가는 아이들은 계획을 세우고 나가는 일이 많을 터인데, 얼떨결에 처음 뛰쳐나간 애들은 갈 곳을 예비하지 않고 나갔기 때문에, 보나마나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렇게 말한 것은 분명히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집에 가서 거실 전등을 끄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아이가 집에 들어오면 절대로 꾸중하거나 때리지 말고, 두 마디 말만 하라고 해 주었습니다. 첫째는, “미안하다.” 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화를 냈습니다. 자기가 무얼 잘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9시가 넘도록 게임을 한 것, 집을 뛰쳐나간 것, 모두 아들이 잘못했지만, 그래도 게임 CD를 가위로 자른 것은 잘못하지 않았느냐며 설득을 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고 게임 CD를 자른 것만 생각하고 사과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화를 가라앉힌 아버지는 그 다음에 무엇을 하느냐고 질문을 해왔습니다. 들어가 자라.” 이 말 한 마디만 더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여러 말로 항의를 하길래, 제가 물었습니다. “아이가 집에 들어오기를 원해? 집을 나가기를 원해? 아이가 집에 들어오기를 원하면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는 알았다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오후에 제가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였습니다. 집을 나갔던 아이는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까요? 거실 전등이 꺼지기를 기다리는데, 거실 등이 꺼지지를 않아서 새벽 3시 반쯤에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야구 방망이로 얻어 맞을 각오를 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들어오는 아들을 향해서 일반적으로 아버지들이 던지는 말은, “? 얼어 죽지 그랬니?” “갈 곳이 없더냐? 기어들어오게.” 입니다. 이 말들이 자녀를 망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제가 알려준 대로, “미안하다.” “들어가 자라.” 두 마디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아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예상 밖의 아버지의 태도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날 밤 잠도 제대로 못 이루었을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성적이 바닥을 치던 이 아들은 그 이후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안산의 유명한 동산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였고, 후에 대학을 들어가서 군대 복무 중에 휴가를 나왔다며 그 아버지와 함께 저에게 인사를 왔던 적이 있습니다. 미안하다.” “들어가 자라.” 이 두 마디가 그 아들을 살리고 세운 것입니다. 감정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말은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 가사원장이신 이경준 목사님이 우리 교회 부흥회에 오셔서도 들려주신 예화인데, 다시 읽어보니 단순한 내용인 듯 하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가정에서 일터에서 캠퍼스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굳이 I 메시지, YOU 메시지에 대한 것을 배우지 않더라도 적어도 진지하게 한번만이라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말로 상처를 주고 평생 트라우마를 지니며 살도록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특히 부모로부터 어렸을적에 들었던 말들은 평생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위선된 칭찬이 아닌 진심어린 격려와 분노하며 들었던 욕이나 저주성 말이 아니라 도리어 사과하고 마음을 만져주는 말은 한 사람을 온전히 세워주는 밑거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그 공동체의 그릇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내 마음에 담을 수 있는 만큼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해져 갑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아니 닮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감정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말이 아니라 도리어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는 말의 훈련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살리고 세워주는 주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

모든 일에 사랑!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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