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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716> 2023. 9. 17

 

빛 되시는 하나님 (1)”

 

우리가 생명의 삶 공부할 때 하나님의 성품 세가지를 배우는데, 하나님은 영이시고 빛이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에, 영으로 예배드리고 빛 가운데 살며 사랑을 실천해야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 딸 답게 사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 , 사랑>이라는 단어들이 좀 추상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연습하는 이유는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특징이 관계와 언어와 성품과 인생의 분위기 가운데 나타나야하는데, 이런 증거를 교회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깨 영광돌린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세상과 전혀 다른 그 분의 성품이 자녀된 우리들의 삶에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기도는 많이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산다고 말은 하는데, 그 사람의 분위기와 관계 속에서는 성질 충만하고 경직되어 있으며 쉽게 원망을 표현하고 섬기기보다 대접받기에 익숙해 진 증거들이 반복해서 나타난다면 신앙생활이라기보다 종교생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경직된 종교생활로 긴 세월을 보내다가 그런 영성이 인격화된 종교인의 더 절망적인 사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계를 갈라 놓으면서도 스스로는 하나님 편이라고 생각하는 오류가 나타나고, 그런 오류 때문에 영적으로 경직되어 가는 모습을 자신만 모르는 안타까운 현상을 목회 현장에서 종종 보았습니다. 이런 분들은 인간적으로 도울 방법이 별로 없었습니다. 성경에도 바리새인 율법학자라는 이름으로 종종 나옵니다.

 

저는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하나님은 빛이라는 사실을 교회 공동체와 개인적 인간관계에서 적용할 때 바퀴벌레의 생태를 예로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더럽다고 해서 그렇지, 많은 짐승들과 벌레들은 어두움 속에서도 빛 가운데 사는 것처럼 잘 살아가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만 보아도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지요. 하여튼 바퀴벌레는 깜깜한 곳에서 파티를 하다가도 불만켜면 싹 사라집니다.

그와 같이 교회 안에도 바퀴벌레와 같이, 뒤에서 수군거리고, 남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퍼뜨리며, 심지어는 기도제목이라고 말은 하는데, 이웃의 어려운 삶의 내용을 부정적으로 전하는 어두운 분위기의 사람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소문을 가장 무서워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가 오늘의 교회 현실에도 종종 등장하는 메뉴입니다. 그만큼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 그 내용의 진실성이나 동기나 관계에 대하여 그냥 부정적인 면만 보는, 분별력이 없는 영적 유치함이 소문을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빛 되시는 성품을 닮기 위해 몇가지 원칙들을 세우고 연습했는데 오늘은 그 한가지를 나누고 다음에 나머지 두가지는 나누겠습니다. 사실 빛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연습에 대해 정말 마음으로 싫어하고 상처 받았다고 원망하며 그렇게 연습하려는 사람을 향해서는 누구 편이네 하면서 갈라 놓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디. 교회 밖은 물론이고 교회 안에서도 감각적인 연습없이 종교생활에 젖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빛 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데는 이런 부정적인 예도 쓰임을 받는다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의 빛 되신 성품을 드러내기 위한 연습으로 <실명제>를 사용했습니다. “누가 그러는데요그러면 누가요?”라고 질문하고, “그건 말씀 드릴 수 없구요그러면 말씀하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답하도록 했습니다. “다 그러는데요그러면 다 이름을 써 보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 많은 사람의 이름을 쓰는 사람도 없었고, 남 끌어다가 자기의 입장을 원망의 코드로 설명하는 사람들을 물귀신이라는 재미있는 이름도 붙여 주었습니다.

빛 되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표현 중에는원망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실 누군가에 대해, 또는 어떤 형편 상황에 대해 원망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주로 원망하는 당사자의 분별력과 성품이 더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떤 경우는 진짜 억울하고 원망할 만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원망을 격려와 축복의 기회로 삼고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에 오늘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각만이 하나님의 빛되시는 성품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보편적으로 인간의 죄성때문에 남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흥미로워하고 또 그런 부정적인 소문을 쾌감으로 추구하지만, 예수 믿는 신앙인이라면 실명제를 통해서 어떤 누구라도 실수와 허물이 있음을 인정하게 하고, 오히려 그 허물을 덮어주는 모습으로 변화되도록 도와주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영적 분별이 필요한 좀 복잡한 일이기도 하고, 어떤 분에게는 불가능한 정직성의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오랫동안 빛 가운데 사는 방향을 가지고, 불편하지만 계속 연습하면 성령님이 다 밝히시고 드러내시고 정리해 주시는 체험을 목회현장에서 수없이 경험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교회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추상적인 영적 언어와 감각을 실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변화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그런 방향으로 공동체 안에서, 특히 목장 안에서 연습해야 함을 강조하며 목회를 통해 즐거운 변화의 체험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가 좋습니다. 다음에 나머지 두가지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북미 가사원장이신 김인기 목사님의 원장칼럼을 옮겨 봅니다. 하나님의 빛되신 성품을 드러내기 위한 공동체적인 훈련으로 <실명제>를 사용했다는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역시도 자신의 의견을 마치 모든 교인들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이 말을 하고, 몇몇 사람들이 한 얘기를 마치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습관이 은연중에 빛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는 생각을 못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은혜 의식의 부재>에서 나오는 우리의 옛속성가운데 하나입니다. 소위 만달란트 빚진 내가 나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달달 볶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은 <말씀을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니라 내 가슴으로 받아서 실생활에서 살아보고 삶으로 녹여내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의 기준은 얼마만큼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에 있기에 김인기 목사님의 나머지 두가지에 대한 칼럼을 기대해 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

모든 일에 사랑!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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