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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688> 2023. 3. 5.

 

분리의 벽이 무너진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

 

교회의 가장 멋진 모습 가운데 하나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동안 우리 가운데 존재하던 모든 장벽을 예수께서 허물어 버리셨기에, 교회에는 종과 자유인의 구분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도 없이 하나가 될 수 있고, 또 하나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진정한 교회라면 각기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되는 모습을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교회에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들이 주로 모여 있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은 그곳에서 기를 못 펴고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런 교회는 결코 좋은 교회라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라면 국회의원과 시장 상인들이 함께 모여서 불편함없이 지낼 수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소외된 감정이나 열등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1998년 하순에 휴스턴 서울교회에 몸을 담고 처음 놀랐던 것은 다름 아닌 교회 안에서 바로 이 세상에서의 높고 낮음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에 집사회(장로교회의 당회와 같은 기관)에는 휴스턴에서 가장 부자라고 해도 좋을 만한 사람이 있었고, 동시에 부유하지도 않고 직업도 내놓을만 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지만 두 사람이 교회의 일로 대화를 나눌 때 본인들도 그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했고, 주변에서 보는 성도들도 전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저 이 분들은 교회가 중요했고, 누가 더 교회를 사랑하는가에 관심이 있지 세상적인 차이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은 목장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예를 들면 목자는 대학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조그마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목장 식구들은 모두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내노라는 인텔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목장 식구들은 목자님을 따르고 있었고, 목자 역시도 그들을 불편해 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또 목장 안에는 생활고를 겪고 있는 사람과 풍족한 사람이 함께 모여서 나눔을 하는데 전혀 불편해 하지 않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목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합동 목장으로 다른 목장의 식구의 집을 방문했는데 상당히 부유한 댁이었습니다. 해외에 나와있는 왠만한 총영사 공관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정도의 큰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맞이하는 그 집 주인이 큰집에 살고 있는 것을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면서 우리를 맞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에서 교회 생활을 하다가 온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교회가 모두 다 이래야 정상이지..’ 하면서도 과연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 저에게는 관찰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래는 제가 생각하는 교회안에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이유들입니다. 가정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가족을 만들어 가는 것이므로 이 부분은 가정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는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 생각해서 원장코너에서 다루어 봅니다.

 

그런 분위기의 교회를 만들려면, 첫번째 교회안에서는 세상적인 성공을 축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당연하겠지요. 교회안에서 한 개인의 세상적인 성공이 부각되고 축하받는 분위기가 되면 당연히 세상적으로 높이 올라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한 개인의 세상적인 성공을 교회안에서 축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는 축하할 뿐 아니라 담임목사님의 눈길이 그런 사람에게 가 있고, 그런 사람을 우대합니다. 그럴 때 교회 안에는 높은 자와 낮은 자의 구별이 생기게 됩니다.

예전에 휴스턴 서울교회에 유명한 프로 골프선수가 교인으로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분이PGA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주일날 그 분은 교회에 출석했지만 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그런 분위기니까 성도들 역시도 그 분과 가까운 사람은 축하의 인사를 건넸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지만 이것이 성도들에게는 교회에서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아. 누가 하나님께 신실한가 그것 하나만이 중요할 뿐이야하는 마음을 심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 역시도 예를 들어서 교인들의 자녀가 일류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것을 칭찬하고 띄우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교회 웹페이지의 나눔터에 누군가가 올린다 하더라도 목회자는 거기에 댓글을 달거나 동조하지 않도록 했고, 그것을 인정하고 칭찬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세상적인 성공이 굳이 교회에서 박수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고, 그런 것이 인정받기 시작하면 그런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벽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위기의 교회를 만들려면, 두번째는 교회안에서는 유명인을 반기거나 환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지역 신문을 보니 어떤 유명한 크리스천 배우 커플이 개인적인 이유로 휴스턴을 방문했는데 그 이야기와 함께 그 교회 목사님과 찍은 사진이 실렸더군요. 이런 식으로 유명인을 우대하면 당연히 성도들 가운데서는 유명한 사람과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벽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유명한 분이 방문한다고 해서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총리를 막 끝낸 분이 미주 강연 투어를 하는 중에 휴스턴에 방문했고, 주일날 우리 교회를 방문한다는 연락이 그 분야에서 일하는 한 성도님을 통해서 왔습니다. 저는 다른 교회를 방문하시기를 권해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특별히 대우해 드리지 못하니 그리 하라고 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 분이 생각보다 겸손한 분이셨습니다. 예배 드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새교우실에 들어왔다가 가시겠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올라온 방문자 카드를 그냥 읽는 것으로 끝냈습니다. 이런 문화가 성도들에게 교회에서는 오직 신앙 외에는 어떤 것도 잣대가 되지 못한다는 믿음을 심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교회를 만들려면 세상의 호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안에서 박사님, 의원님, 사장님 등등 세상적인 호칭으로 불려진다면 신앙은 둘째로 밀려날 것입니다. 그래서 휴스턴 서울교회는 목자, 목녀, 그리고 소수의 안수집사 외에는 모두 형제, 자매라고 불립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는 MD 앤더슨에서 일하는 유명한 암전문의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일반인들은 쉽게 만나지도 못할 정도의 권위있는 분들이지만 교회에서는 그저 형제님으로 불립니다. 이런 평등한 호칭이 성도 간에 벽을 허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담임목사가 만들어 가야하는 교회의 문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교회 사이즈가 크고 이미 문화가 만들어 진 곳에서 그걸 바꾸어 나가는 것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100-200명 규모의 교회라면, 그리고 담임목회자가 지금부터 그런 문화를 고집해 간다면 분명 종과 자유인의 벽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도 허물어진 그런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국제 가사원장 이수관 목사님의 칼럼을 읽으면서 내내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제 안에 남아있는 분리의 벽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유력한 것들에 대한 제 자신의 연약함도 보았습니다. 교회안에서 세상적인 성공을 축하하고, 한때 지역사회의 유력한 분을 반기거나 환영을 하고, 가끔 세상의 호칭을 사용하는게 마치 그분을 높여드리는 착각가운데, 이 칼럼이 다른 사람이 아닌 담임목사인 제 자신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 수요성령기도회를 마치고 주보를 만들면서 계속 회개하면서 결단하였습니다.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는 영혼구원과 제자양육이라는 분명한 목표의식과 더불어 내적으로는 바로 이런 분위기가 정착된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우리 행복을 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

모든 일에 사랑!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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