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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583> 2021. 2. 21

 

우리가 반드시 바꾸어 가야 할 세가지

 

(국제가정교회사역원 원장코너를 읽으면서 지난주간 제게 임한 은혜와 매칭이 되어 이수관 목사님의 글을 또다시 옮겨 봅니다)

 

요즈음은 원장코너를 쓰는 것이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가정교회를 위해서 도움이 될만한 얘기들은 많이 있지만,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현 상황에 맞는 얘기를 써야 할 것 같고, 그렇게 현 시국에 맞는 얘기를 쓰자니 정치적인 성향을 띄지 않을 수 없고, 정치적인 성향을 피하자니 결국 뻔한 얘기만 쓰게 되고.. 뭔가 가사원장으로서 바른 가이드를 주어야 좋을터인데 지금은 교회마다 상황이 다르고 미주와 한국이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른 상황에서 각자 목회자님들이 최선을 선택하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아서 결국 일반적인 얘기나 하게 됩니다.

 

예전에 기업에서 일하던 당시에 CEO의 지시에 따라 신설된 아주 중요한 팀의 팀장을 맡는 영예를 누린 적이 있었습니다. 팀장인 저에게 인사에 대한 전권이 주어졌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면 회사내의 어느 부서의 사람을 뽑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인사부에서 사원 명단을 입수하여 적합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 머리속에는 어떤 스펙의 사람을 뽑아야 겠다는 뚜렷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일단 영어는 토익 몇 점대로 하고, 고과 성적은 어느 정도로 받고, 그러는 동시에 멀티 미디어 분야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등등. 당시 제 생각으로는 대기업의 그 많은 사람 가운데는 내가 찾는 스펙의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명단을 갖다 놓고 사람을 고르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이 큰 회사에도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려고 하면 정말 적당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영어를 잘하면, 업무능력이 떨어지고, 업무능력이 좋으면, 관계와 협동심의 평가가 좋지 않고.. 이런 식으로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세가지를 골고루 갖추고 있는 사람은 참 없구나 하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때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도 우리를 볼 때 그러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은 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므로 하나님과 함께 할 사람을 찾으시는데 하나님이 이 친구 쓸만하구나!’ 하실 만한 사람이 참 없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능력은 있는데, 성격이 강해서 늘 관계를 헤치고, 하나됨을 깨뜨립니다. 그래서 성품이 좋은 사람은 찾으면, 그는 또 너무 게으르고 변덕이 심해서 일을 맡길만큼 성실하지가 못합니다. 그래서 성실해서 꾸준한 사람을 찾으면 또 너무 이기적이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줄 모르는 등, ‘아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정작 내가 쓸 사람이 없구나!’ 하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의 성공은 소명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겠다고 불러주시면 우리는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노력해야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를 준비시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고자 할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강한 자아인 것 같습니다. 자아가 강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뭔가를 말씀하셔도 듣지 못할 가능성이 많고, 하나님의 가이드를 따르지 않고 내 방식대로 하기가 쉬운 사람이지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부르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자아는 우리가 깨어질 때 죽는 것 같습니다. 실패를 맛보며 나의 한계를 인식하고, 고난을 맛보며 자존심이 무너지고 그러는 가운데 우리의 자아가 죽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난과 실패가 소중한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자아를 죽이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순종을 통해서 입니다. 나의 의지가 강하게 거부하는 어떤 일이어서, 정말 하고 싶지 않을 때 내 의지를 죽이면 그런 일이 반복될 때 나의 강한 자아가 점점 죽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대에 나의 자아가 가장 거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두 번째,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고자 할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우리의 이기심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이기적입니다. 손해보는 것이 싫고, 힘든 것은 절대 안 하려고 하고, 내가 편한 방법만을 찾고.. 여성보다도 남성들은 그 성향이 훨씬 더 한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 목사들은 아무래도 섬기기 보다는 섬김을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섬김을 많이 받는 사람이 덜 이기적일 것 같은데, 사실은 섬김에 익숙해 질 수록 더 이기적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 날 일이지요.

이런 우리의 이기심을 죽이는 방법은 어떤 식으로든지 희생을 감수하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조금 더 손해를 보고, 주어야 할 때는 손익 계산서 따지지 말고 희생적으로 주고,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할 때는 그의 부탁보다도 한 걸음 더 나가서 도와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조금씩 더 희생하는 연습을 할 때 우리의 이기심이 조금씩 극복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고자 할 때 방해가 되는 것은 우리의 불성실과 변덕입니다. 사역을 약속했다가도 조금만 힘들면 안 하겠다고 하고, 조금만 열매가 없으면 의미없는 일이라고 내 인생이 낭비되는 것 같다고 한탄을 합니다. 이 사역을 조금 하다가 안 되면, 또 다른 사역을 해 보고, 또 안 되면 다른 사역으로.. 우리는 참 성실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쓰임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원하면 뭘 하던지 간에 꾸준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정교회 사역을 하기로 했으면, 이것이 옳은 길이고 정답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시작을 했다면 꾸준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한 자아, 이기심, 그리고 불성실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려 할 때 가장 불편한 부분입니다. 이 세가지를 하루 하루 고쳐가다 보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좋은 사람으로 바껴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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