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580호> 2021. 1. 31
“열등감을 넘어서 자유함으로”
(국제가사원장 이수관 목사님의 칼럼의 제목과 내용을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몇 장 되지 않는 중고등학교 시절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면 유난히 해맑아 보이는 모습속에 보이지 않는 당시의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그 당시의 감정이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그 때는 그것이 저에게 일종의 열등감이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3남 2녀의 형제들 속에서 그닥 뛰어나지 못했던 성적에 대한 열등감 때문입니다. 위 아래로 작은 누님과 바로 밑에 남동생의 전교 1-2등에 비해 중간에 끼어있었고, 장남으로서 기대가 컷던 탓에 학교 성적이 중간 정도에 머물렀던 저로서는 여간 큰 스트레쓰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류의 성적에 대한 열등감은 사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 마음 속 깊이에 남아있는 열등감은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님께 충분한 사랑과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자랐을 경우, 가난으로 인한 서러움을 받았을 경우, 그 외에도 내가 가진 핸디캡이나 실패의 경험은 우리에게 뿌리 깊은 열등감을 남기는데 그것은 참으로 오랫동안 우리를 붙잡고 있는 문제가 됩니다.
사역을 하면서 보면 인간의 여러가지 문제 가운데 이 열등감의 문제만큼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없다 싶습니다. 때로는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주기도 하고, 특별히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위기관리의 능력을 약화시켜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는 성도님들을 도울 때에도 이 열등감에서 비롯된 문제에 다다르면 더 이상의 접근이 어렵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 열등감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목회자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목회를 하다가 만나는 동료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열등감으로 느껴지는 행동이나 말을 해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분들을 가끔 만납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사역을 하다보면 수많은 어려움을 겪을 텐데 저런 열등감에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사역이 매끄럽지도 못할 것이고, 또 본인 스스로가 사역을 누리지 못하고 자유함과 기쁨이 없는 목회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저 역시도 돌아보면 많은 부분에 어르신들의 사랑과 이쁨을 독차지 했지만, 청소년 시절에 성적으로 인해 부모님께 인정과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저런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권위적이셨지만 자식 사랑이 남달라 특히 공부 잘하는 자식에 대한 애착이 강하셨고, 어머니 역시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한번도 채찍이 없는 사랑과 경제적인 여유를 주셨지만 역시 당신들이 자수성가했다는 자부심으로 인해 학교성적이 좋은 자식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받고 있었지만 웬지 주목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늘 있었고, 스스로 비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바깥에서 서성거리다 해가 지면 어쩔 수 없이 들어가던 그런 곳이 집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런 모든 것이 저에게 열등감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그 열등감을 여전히 지닌 채로 목회를 시작했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나뿐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목회자로의 부르심가운데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속에서 그 열등감을 모두 치료해 주신 이후에 저를 불러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열등감은 어떻게 치료가 되었을까? 많은 것들이 있었겠지만 생각나는 몇 가지를 나열해 봅니다.
첫번째는 나에게 열등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열등감이라는 것이 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했는데, 저의 경우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 무렵에 저는 성적으로 인해 인정받지 못한다는 열등감때문에 미션스쿨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고 저의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참 많이 가져갔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그게 열등감인지도 몰랐지만 나의 문제를 치유해 달라는 기도를 참 많이 드렸던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내앞에 닥친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로 오는 성공을 체험해 갔던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저의 열등감에 파이널 펀치를 날린 것은 대학입시의 실패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절친들이 모두 서울로 진학할 때에 나만 홀로 지방대학에 남아있게 되어서 거기에서 오는 제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창피함은 다시 복음을 알고 예수님을 영접하기까지 허송세월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시험에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교 편입시험도 우수한 성적으로 붙었고, 심지어는 당시에는 운전면허 시험도 오전에 이론, 오후에 실기도 한번에 붙었고, 이후에 총신대학교신학대원도 입학도 우수운(^^)성적으로 합격하였으며 그 이후에 시험이 참 많았는데, 늘 최선을 다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시험 뿐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기도로 도움을 구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얻어지는 좋은 결과는 조금씩 열등감에서 빠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세번째는 제 옆에서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제가 받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을 채워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였는지 저를 마음놓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고, 동시에 나만을 의지하고.. 변함없는 아내의 사랑이 저를 조금씩 고쳐 갔던 것 같습니다.
네번째는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저는 1990년도부터 교육전도사를 시작으로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 등 부사역자로서 16년간을 섬기면서 나름 맡은 부서마다 부흥과 성장을 가져오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특히 2006년 우리 교회로 부임하면서 담임목사로서 15년을 보내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지금까지 31년간 거쳐갔던 많은 제자들과 성도님들이 저를 참 많이 사랑해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그들을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요즈음 들어서 느끼는 것은 그 31년 동안 공동체안에서 제가 참 많이 사랑과 존경과 존중을 받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의 관계는 피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정말 때로는 부모와 자녀처럼, 때로는 형과 동생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그들을 위해서 함께 울고 웃었는데, 돌아보니 그런 저에게 그들이 보내 주었던 신뢰와 존경이 저를 치유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문제에 매달리지 않고 남의 문제를 놓고 씨름할 때 하나님은 저를 치유해 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했고, 나같은 사람을 불러주셨다는 것이 감사해서 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한번도 다른 길로 가지 않았고 오직 한길만을 향하여 달려왔습니다. 비록 지방대학이었지만 과특성상 2년간 헬라어를 배울수 있어서 신학대학에 들어가서도 고대언어에 대한 어려움이 별로 없었고, 신학이라는 학문이 너무 어려워서 또한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전전해가면서 늘 울었고, 그러나 힘들었지만 견딜수 있도록 인도해 주셔서 은혜로 당당히 졸업하고, 당시 한두명 합격하던 신학대학원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때쯤 미국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여러가지 상황으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접었지만 더 배워서 나누고 싶었던 작은 꿈을 기억하시고 빡새던 부목사 시절에 대학원을 공부하면서 주시는 하나님이 놀랍고 감사해서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놀랍네.’ 그 찬양을 부르며 정말 매일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 저를 치유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제 안에 열등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1%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또 위기를 만나면 숨어있던 것이 들어날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저에게 남아 있다면 그 기간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사랑을 키워나가고, 그 사랑이 깊어져 어느 날 사도 바울처럼 주님 외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쓸모없는 것이라고 느껴지는 그 날이 나의 열등감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해지는 날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