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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579> 2021. 1. 24

 

만드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

(미주가사원장 김인기 목사님의 목회칼럼을 옮겨봅니다)

 

오늘 쓰는 글은 비전교회라는 조그만 공동체의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오늘의 교회 현실도 그렇지만 한국인, 더구나 미국에 이민자로 사는 다양한 배경의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 근거한 일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생각이나 방법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은 누구나 성경적 교회, 주님이 주인되시는 교회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말의 의미도 혼돈되어 있고, 성도들의 체험과는 너무 동떨어진 현실에서 그 괴리를 조금이나마 좁혀 보려는 노력의 방법이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진행형이라는 점을 먼저 전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정교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은 많이 다르지만, 동시에 그런 영성이기 때문에 가정교회에 목숨을 걸고 형제자매들(시중 말로 평신도)을 세워 함께 목회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지만, 저의 이민 교회의 경험 대부분의 그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경험한 교회라고 하는 그림 속에는 목회자는 높고 교인들은 세상에서 죄 짓다 와서 회개하는 그림(죄책감 조장), 또한 예수님을 향한 순종과 목회자에 대한 복종이 많이 혼돈된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목회자나 교인이나 더 많은 문제의 핵심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많이 보았습니다.

근본적으로 한국인의 사고 속에 있는 상하 계급적인 생각의 구조 때문이겠지만, 목회자도 이분적 구조로 교인들과의 관계를 맺는 현상을 많이 보았습니다. 목회 성공의 의미를 "한 영혼이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제자로 자라나는 모습을 위해 목회자로서 분골쇄신하는 것"으로 가져야 하는데, 일반적인 분위기는 교인을 군중으로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를 하는 저로서는 정말 예수님의 "종놈"이 된 기쁨이 늘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교회 형제자매님들의 삶의 변화, 형제자매들이 영혼을 섬기는 모습으로 살도록 시범을 보이고 도와주는 목회에 수종드는 "종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 식으로 말하면 형제자매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성공하는 열매를 목격하는 증인으로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구호를 수천번 이야기했습니다. "우매한 군중이 우매한 지도자 뽑고 우매한 지도자에게 우매한 일을 당하지만 정작 그런 일 당하면서도 그게 우매한 일인 줄도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그래서 먼저 교인 한사람 한사람이 성령의 다스림 가운데 분별의 영성을 기르자고 목장을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조금 다니면 성령의 다스림, 성령충만 같은 말을 설교 때 많이 듣기는 하지만, 그게 정작 뭔지 경험을 못해 보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쓰는 종교적 은어 정도로만 아는 사람이 엄청 많은 것도 발견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 올 때는 옷 잘 입고 교양 있게 말하니까 다 좋아 보여도, 일단 목장에서 매주 만나 식사하는 것을 일년만 하면 갈등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미리 반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나도 내가 싫을 때가 많은데 어떻게 교회에서 만난 사람이 내 맘에 들겠는가를 강조하면서, 예수님도 예수님 맘에 드는 사람만 골랐다면 우리는 다 이미 지옥에 간지 오래될 사람들인데, 그런 갈등을 신비한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덮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것 연습하자고 격려했습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세울 때마다 세우려는 사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군중이 모여서 소위 "투표권 행사"한다는 민주주의 다수결 투표도 점점 의미 없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민주주의의 출발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의 존엄성을 종교의 이름과 미신적 교리로 수없이 짓밟은 죄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민주주의였습니다. 진짜 민주주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인간의 존업성이 근거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주의는 철저한 인본주의가 근거입니다. 인간이 모여 다수가 원하는 것이 진리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정치가 대표적인 현장이지요. 거기에 물든 교회도 단순히 세상이 말하는 민주주의 다수결 투표라는 방법을 가져다가 뭔가 결정을 하면, 그 결과는 말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일 뿐, 분쟁과 다툼이 열매로 나타나는 "우매한" 결정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교회의 아픔을 근거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의 민주주의, "다수"의 의견에 따르려면, 먼저 그 "다수"가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분별할 줄 아는 영성이 준비된 사람, 갈등을 예수님을 근거로 극복한 경험도 있고, 영혼을 섬긴다는 그림도 확실해야 하고, 예수님이 나를 섬겨주신 은혜가 뭔지 간증할 줄 아는 사람이 모인 "다수"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자를 세우거나, 새 목회자를 청빙하거나, 소위 교회의 중요한 방향을 결정할 때마다 민주주의 다수결 투표라는 방법때문에 늘 아픔이 있었습니다. 목회자는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은 성도들의 마음에는 쓴뿌리, 불신, 분노만 쌓여가는 현상을 오늘도 누누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거나 회개하거나 원인을 찾지 않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향하여 원망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소위 민주주의 다수결 투표로 사람 세우고 청빙하는 방법을 버리기로 하고, 대신 수많은 기도의 자리를 마련하고 목장을 통해서 성령님 의지하는 갈등 극복의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교회 분위기가 갈등을 평화로, 문제를 기도로, 내 경험을 하나님 경험으로, 위기를 헌신으로 극복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각자의 관계에서 스스로 경험하도록 구체화 했습니다. 또한 나와 "다른" 사람을 섬기는 목장에서 주님의 도움을 의지하여 갈등을 이겨나가는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얼그러진 관계라고 도망가는 것은 유치한 짓이라는 사실도 강조했습니다.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다는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도 말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그런 사람 찾아서 만나서 일부러 당해보는 자리에 몇 년 체험해 보고 말하자고 격려했습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직분자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잘 모르는 군중이 모여 투표하는 것이 없어지고, 목자부부들이 모여 공천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공천된 본인도 교회 리더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람이 뽑았지만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지하는지 심도 있게 물어보고 삶을 드러내게 합니다. 그리고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간증하게 하고, 부부의 사랑, 영적인 존경, 자녀들과의 영적 관계를 심도 깊게 나눔으로 확인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미 목자목녀로 목회 현장에서 다양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삶의 변화를 체험하고 영혼구원의 기쁨을 맛 본 분들이기 때문에 자녀들과 교회 공동체 안에 이미 존경받고 좋아하는 분들이 우러져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이미 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모습이지요. 억지로 법 따지며 투표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알기에 자연히 만들어지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직분자를 세울 때마다 박수치며 격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군중에서 분별있는 공동체로 성장 변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 후임 목사님을 미리 모셔 오는 일에 대해서도 만나는 목회자마다 "조심해라, 잘못되면 어떻하냐, 사람 믿으면 안된다" 걱정해 주셨지만 교회 안에 청빙위원회 없이, 어떤 목사님이 와도 앞으로 같이 살아가며 갈등을 헤쳐 나가겠다는 공동체의 영성이 만들어지니 자연스럽게 모셔와서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지금 2년 째 잘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법과 전통은 주로 부정적인 사건에 근거하여 그것을 막아보려는 소극적인 출발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이야기하며 "법 없이 사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유한 법을 누리는 연습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것도 아니고 어느 교회나 어느 목회자나 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의 그림을 형제자매들의 체험 속에 담아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확실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분 좋은 목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런 변화를 만들기 위해 성도들을 설득한 내용들을 담아볼까 합니다. 여전히 비전교회의 케이스라고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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