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닮동산 99기 수료소감
(13 랑깜목장) 이신성 목자, 2024.2.11
안녕하세요.
방송실 엔진이어와 안전관리부를 섬기고 있는 13 랑깜목장의 이신성 목자입니다. 이번 간증을 준비하면서 예닮동산 99기 주바라기로 참여하고 새어부가 되어 경험했던 동산의 은혜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직 다녀 오시지 않은 분들이 계셔서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최소한의 부분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첫인상은 혼자 상상했던 산속 기도원은 아니었습니다. 읍내에 있는 일반 교회의 모습이였습니다. 산에가서 통나무를 굴리는 상상과는 달랐지만 역시 통나무 굴리기는 힘들었습니다. 돌아오는 마지막 날까지 굴릴줄은 몰랐습니다. 나중에 가시는 분들은 각오는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걱정마시고 맡기시면 다 해결이 됩니다.
매 시간 정성이 가득한 프로그램 가운데 은혜가 넘쳤지만 몇가지 기억나는 은혜의 순간만 나누려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저에 대한 속 이야기도 좀 풀어 놓으려 합니다.
첫번째, 첫날 저녁에 자고 일어 났는데 얼굴에 이상한걸 막 붙이고 세수도 못한채 끌려가서 찬양하고 노래하는데 찝찝함에 솔직히 짜증이 났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율동 하면서 찬양하다가 아주 익숙한 느낌이란걸 느끼게 되었고 ‘어 이 익숙한 느낌은 뭐지?’ 생각할때 예전에 바누아투라는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에 단기선교를 간 기억이 나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흑인 아이들과 시간가는줄 모르고 몇시간을 뛰면서 찬양했던 기억이났고 그때서야 내가 얼마나 세상에 찌들어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순수했던 그때가 생각나면서 다시 그 기쁨을 맛보게 하셨고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였습니다.
두번째는 특별한 예식을 했습니다.
스포가 될까봐 조심스러워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을 못하겠지만 그 많은 사람중에 저에게 이태원 집사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과 봉사하시는 모습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졌고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그냥 길에서 봤으면 일산동 동네 아저씨 일텐데, 그토록 동산에서 풀타임으로 헌신하시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다시한번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집사님처럼 그렇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세번째는, 주바라기로 참석자중에 이제 막 성인이 된듯한 어린 자매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어린 친구는 여기 왜 왔을까?‘
궁금했습니다. 얼굴에 나 정말 오기싫은데 억지로 왔다고 써있었습니다. 역시나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부모님이 억지로 보내서 온것이였습니다. 성인이 되면 무조건 예닮을 참석하는게 그 가정의 방침이라고 합니다.
’중간에 그만두고 가지않을까?‘ 라는 생각도 혼자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제 우려와는 다르게 몇일후 찬양시간에 무대 앞으로 불려나가서 신나게 춤을추고 환한 얼굴을 하고있는 소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 이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구나!’ 생각하면서 갑자기 제 두 딸아이가 생각났습니다. 믿음안에서 잘 자라도록 도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과거가 생각났습니다.
이해를 돕고자 잠시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도 모태 출석교인으로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4대째 신앙의 집안이며 특히 증조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사이자 기독교 독립투사 이셨고 일제시대에 옥살이를 하시면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런집안에서 아버지는 목사님이 되셨고 집안의 자랑이였습니다. 거제도의 작은 마을에서 목회를 시작하셨고 제가 8살이 되던해 읍내로 나와 개척교회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크게 부흥해 건축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인끼리의 다툼과 주변 목회자 분들의 이간질로 교회는 둘로 쪼개졌고 아버지는 괴로움에 40일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그 어려움을 틈타 새로운 교인들이 왔는데 이단교회 사람들이였고 포교 활동으로 교회 문을닫고 그 교단으로 이적하였습니다.
제 나이 13살때부터 그 교단에서 운영하는 인가받지 못한 학교를 다녔습니다. 종말적인 시각이 강한 이단교회 였기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살았고 어렸을때부터 농사일 공장일 현장일 안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쇼쌩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의 삶이 감옥에 갇힌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20대 초반에 무작정 집을나와 일용직과 중국집 배달원을 하면서 무신론자의 삶을 시작 했습니다. 다 이야기 할수는 없지만 그렇게 험악한 세월을 보냈고 삶이 한마디로 고난의 연속 이였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잊고 싶은 과거의 이야기라서 꺼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고 나와 우리 가족의 치부가 드러 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치부를 드러 내는것도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한 가족 되었음을 믿기 때문에 고백할 용기를 내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았을때 신앙의 울타리안에서 자녀들을 양육한다는것, 하나님의 사랑을 순수하게 잘 전수 한다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일을 충성되게 잘 하여야겠다고 생각하니 한가정을 저같은 사람에게 주심이 얼마나 큰 감사이자 사명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교회를 통해 평신도목회자인 목자로 세우셨고 연합 교회사역도 하게 하셨습니다. 저는시키는것만 못이기는척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은주변을 보니 할사람이 없는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하십니다. 때로는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적으로 믿으며 하나님이 저를 위해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순종하게 하십니다. 성공하고 화려한 삶이 아니라도 하나님의 소원에 초점을 맞추며 진심으로 누군가를 섬기는 종으로서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기도 해주시고 응원 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아직도 그 이단교회에서 사람들과 오랜시간 지내면서 단체생활 하시는 저희 어머니와 세상으로 나와서 무신론자로 살아가는 어렸을적 제 친구들을 위해서도 중보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한가지 아쉬웠던건 우리교회 목사님이 예닮동산에서 주방장으로 유명하시다고 들었는데 독감으로 몸이 아프셔서 그 모습을 보지 못한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다음에 도우미로 가면 꼭 볼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늘 기도와 말씀으로 또 삶으로 치열하게 섬기시려고 애쓰시는 목사님과 사모님, 동숙초원의 초원지기 김동숙 목자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목장모임에서 부족한 저희 부부의 다툼을 잘 견뎌주는 저희 목원들, 그리고 우리 가정을 위해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주시는 행복가족분들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또한 드러나지않게 저를 정말 아껴주시고 음식으로 섬겨주시는 장모님 유순자 집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목장을 위해 최근 감자탕도 해주셨는데 너무 잘 먹었습니다. 장인어른도 잠깐 쉬고 계신데 하나님께 돌아 오시도록 기도해주세요.
끝으로 연약하고 부족한 저를 섬겨주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주신 소현희 목녀님께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귀한 선물 딸 가은이와 나은이를 축복합니다.
좋은 교회, 좋은 성도들을 만나게 하시고 예닮동산을 통해 다시금 은혜를 회복하도록 인도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삶 가운데 영원히 함께해주실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하늘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