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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동산 칼럼 320호) 2016. 2. 7

   

 

원인을 알 수 없던 죄의식

 

(공감이 되는 좋은 내용이라 미국 휴스톤서울교회의 이수관 목사님 칼럼을 옮겨 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늘 신심(神心)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풍가서 절이라도 가게 되면 불상을 보고 절을 했고, 정월 대보름 같은 날에는 달 보고 기도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 속에서 필요할 때 찾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었습니다. 언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저에게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제가 대입시험이나 입사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그 외에도 저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늘 제가 찾던 제 기도의 대상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님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하나님은 썩 편한 분은 아니셨습니다. 편하다기보다는 도리어 두렵고, 늘 피하고 싶은 무서운 존재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저의 죄를 지적하시는 것 같았고, 실수라도 할 것 같으면 비웃고 계시는, 그리고 내가 죄를 지을 때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시는 그런 하나님으로 느껴져서 교회에 나가기보다는 늘 그늘 뒤로 숨고 도망을 다녔던 것 같습니다.

왜 하나님을 찾았으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했을까? 이유를 생각해 보니 몇 가지가 생각이 납니다. 한 가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도덕관>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도덕기준에 제 스스로가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늘 그것이 저에게 실패감을 주었고, 그것이 하나님은 날 싫어하신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를 두렵게 한 것은 제가 반복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저도 당시 뭔가 끊임없이 하나님과 약속을 했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하지 않겠다던지, 이렇게 해 주시면 교회를 다녀 보겠다던지, 그렇게 제가 제시하는 약속과 조건에 대해서 하나님은 늘 잠잠히 계셨지만 저는 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것이 반복되다보니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 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신심이 있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심이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도덕성이 있지만, 그것을 지켜낼 능력이 없으니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먼 길을 돌아 교회는 발을 들여놓았을 때, 비로소 저에게는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풀려서 좋았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도덕이 결코 지킬 수 없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면서 평안해 졌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언제든지 마음 놓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 가운데는 어릴 때의 어떤 기억으로 하나님을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어쩌면 저와 비슷하게 하나님을 찾고 있지만 또 이유를 알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불편함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그 두려움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생기는 두려움이고 피하기보다는 교회에 나와서 그 분을 만날 때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어쩌면 내가 평생 시달리던 원인을 알지 못하던 죄의식과 불편함이 해소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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