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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737> 2024. 2. 11.

 

자식으로 키우지 말고, 사랑으로 키웁시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어느 집을 방문 하였습니다. 그 집에 사는 부부는 자녀를 입양을 해서 모두 여섯 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아이는 열여섯 살의 한국 소녀였습니다. 막내인 여섯 째 아이는 흑인이었는데 생후 1년도 안 된 아이로, 몸이 건강하지 못해서 여린 몸에 링거 바늘을 꽂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두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첫째 질문은, ‘이렇게 아이들이 아시아인, 흑인, 백인이 함께 있으면 누가 보아도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않겠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주로 자녀가 없는 집안에서 자신의 자식으로 입양을 하는 문화이었습니다. 그래서 입양을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두 번은 이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몸이 약하여 링거를 맞고 있는, 친엄마도 포기한 아이를 어떻게 입양할 수 있는가?’ 이었습니다. 당시에 우리나라는 주로 건강하고 잘 생긴 아이를 입양하는 추세였습니다. 결국은 궁금해서 입양한 부부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대답은 간단하였습니다.

첫째 대답은, 자신들은 공개적으로 입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도 모두 자신들이 입양된 자식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둘째 대답은, 그 부부는 아이들을 입양할 때에 자식으로 입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입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공개 입양이 우리나라도 자연스러워졌지만, 당시 우리나라 문화만 보고 지내온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비밀로 하려고 했지만, 끝내는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 경우가 제법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고 그에 적응하여 성장을 하면, 도중에 정체성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얼마나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느냐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 가족들이 재미있게 우리들과 저녁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9시가 되자, 아이들이 한 명씩 아빠와 엄마에게 다정하게 포옹을 하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잠을 자기 위해 자기 방으로 가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자식으로 입양하는 것이 아니라,사랑으로 입양한다.’는 말이 지금도 제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친자식을 낳아 키울 때에도 자식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양을 할 때에 자식으로 입양을 하면, 내가 원하는 자식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짜증을 내거나 심지어 입양한 것을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입양을 하면 내가 원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사랑으로 품어줄 수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자신이 낳은 자식에 대해서도, 자식으로 키우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에 실망하고 낙담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낳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키우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에도 사랑으로 이해하고 품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교회에서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으라.’는 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전도할 목적으로 VIP를 찾으면, 사람들은 영물(?)인지라 그 마음을 알고 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VIP를 섬기면, 그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목장에서 목장식구들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을 성장시켜서 목자로 삼으려고 하면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성장하여 목자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가사원장 이경준 목사님의 칼럼입니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최근 제 자신의 모습속에 나타난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사랑으로 키우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에도 사랑으로 이해하고 품어줄 수가 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없겠습니다만은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소유욕은 결국 품는데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가정 뿐만아니라 목장과 연합교회안에서도 동일한 원리인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같이 있다보면 최소한의 기준과 아울러 어떤 기대치가 생기게 되는데, 이것에 만족되지 못하면 이내 실망과 섭섭함, 서운함과 아울러 때때로 분노와 상처로 돌아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왜 주님이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지를 묵상해 보면 결국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인 것을 주님은 미리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배신과 군중들의 무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으셨기에 자신의 소명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것입니다.

적어도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객관화하고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겸손하게 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놓쳐버리면 금새 사람에게 위로받고 격려받으며 칭찬받는 것에 자신의 기분과 믿음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격려와 칭찬, 그리고 위로와 격려도 매우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분의 백성인 만큼 먼저는 그분과의 관계속에서 부어지는 은혜와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신이 속한 목장과 사역팀의 공동체 속에서 서로서로가 존귀히 여기는 가운데 온전히 세워지는 통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신실함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때때로 어떤 이유로든 말씀이 들리지 않고 기도가 되지 않아도 있는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말씀과 기도를 붙들고자 하는 주님앞에 홀로서는 훈련가운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진정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인도하시고 역사해 주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믿음의 자세와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에 우리 자신이 먼저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그 중심에 내가 아니라 주님이 되셔야 합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

모든 일에 사랑!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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