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647호> 2022. 5. 15.
“성도들의 얼굴에 웃음이 있는 교회”
가정교회를 잘 세워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필요 요소 가운데 하나는 성도들의 얼굴에 있는 웃음이다 라는 말씀은 몇번 드렸던 것 같습니다. 성도들의 얼굴에 웃음이 많다는 것은 그들의 교회생활이 행복하다는 의미이고, 그럴 때 그들은 적극적으로 VIP를 찾아 나설 것이고, 또 방문한 VIP도 그 웃음을 보고 교회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는 성도들의 얼굴에 웃음을 돌게할 수 있을까? 또 무엇이 성도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빼앗아 갈까?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중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게 할 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목회자가 성도들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느낄 때 성도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목사로서 성도님들이 변하고 영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내 바람대로 변하지 않을 때 답답함을 느끼고 심하면 짜증이 나게 됩니다. 이러한 짜증과 답답함은 성도님들에게도 전달이 되고, 부모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아이가 늘 주눅이 들어있듯이 그렇게 주눅이 들면서 결국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 성도들을 향햔 그런 답답함과 짜증이 있는지는 어떻게 아는가? 간단하게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목사의 성도를 향한 답답함은 설교에서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설교에서 늘 톤이 올라가던지 아니면 혼내는 일이 자주 있으면 답답함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 강단에서 잔소리를 하는 나를 보면 압니다. 예배에 늦는다고 한마디 하던가, 또는 부흥회를 하는 날‘꼭 들어야 할 사람들이 안 온단 말이야…’하는 식의 얘기를 자주 하고 있다면 내가 성도에 대한 답답함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실 이 두가지는 제가 한국에서 평신도로 생활할 때,자주 듣던 말이었습니다. 이런 목사님의 성도를 향한 답답함은 저에게 고스란히 느껴져서, 비록 저는 지각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뭔가 혼난 것 같은 마음, 패배자가 된 것 같은 마음으로 풀이 죽어 돌아가곤 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가정교회 목회자인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내 생각에 목자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목자,목녀를 향한 마음 속의 못마땅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못마땅은 분명히 나의 말이나 태도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역에 대해서 자꾸 묻는다던가, 아니면 보고를 요구한다던가, 어떤 때는 참지 못하고 잔소리를 할 때 그 마음이 들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목회자가 완벽증 기질을 가지고 있다면 특히 더 그럴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못마땅해 하는 일이 반복될 때 그것은 천천히 성도를 불행하게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남의 얘기가 아니고 저의 얘기입니다. 요즈음 돌아보면 내가 그런 모습이 많았구나 하고 반성을 하게 됩니다. 담임목회자가 된지 10년이 되어서야 나 스스로가 보이는 것 같아서 성도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두 번째, 목회자가 교회가 빨리 자라고 부흥하지 않는 것에 대한 조바심을 느낄 때 성도님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목회를 시작할 때 자신감으로 시작한 분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분명히 이렇게 하면 교회가 자라야 하는데 왜 안 자라지?하는 의구심이 있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지만, 때로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게 되는데 그런 조바심은 다른 사람에게도 느껴지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개척교회에서 더 쉽게 두드러질 수도 있습니다. 보통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는 대부분의 경우 빚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그렇지 않다고 해도 큰 공간을 임대한 월세가 부담스럽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빨리 사람이 와서 이 예배 공간이 채워지기를 바라게 되지요. 그런데 생각만큼 교회가 자라지 않을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그 부담감은 고스란히 성도들에게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반기는 것이 영혼구원의 열정으로 반기는 것인지 아니면 공간을 채워야 하는 부담으로 반기는 것인지, 또 성도들에게 전도를 독려하는 것도 영혼구원 열정으로 독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공간을 채워야 하는 부담으로 독려하는 것인지가 느껴지고 그런 부담감은 조금씩 성도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교회를 시작한 목회자들도 기억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가정교회로 전환하고 나면 빨리 가정교회를 정착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빨리 가정교회의 정회원 교회가 되고 싶고 세례를 주는 일이 많아져서 세례율 5%를 넘기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선한 기대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나의 기대가 조급함으로 변한다면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조급함을 조심하고 나의 선한 기대가 조급함으로 변하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요즈음 우리는 포스트 코비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난2-3년을 지긋지긋하게 우리를 괴롭히던 코비드가 엔데믹으로 변해가고 우리는 일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때도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빨리 교회가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에 대한 조급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예배 참석 숫자가 빨리 과거의 그것으로 돌아가지 않는거지? 왜 목장을 대면으로 모이는 것에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하면서 닥달을 한다면 안 될입니다. 물론 이 일들은 우리가 꾸준히 독려해야 할 일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독려가 우리의 조바심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도님들에게 신앙생활의 의무감을 강조함으로 독려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 보다는 목장과 교회에 대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 행복을 조금씩 맛보게 하므로 스스로 그 행복을 찾아가도록 안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많이 웃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님들, 많이 웃으시고 많이 행복해 하셔서 행복한 성도, 행복한 교회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요즘 담목이 저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 같아 가사원장 이수관 목사님의 칼럼을 옮겨 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