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634호> 2022. 2. 13.
지금은 용기를 내어야 할 때
제가 살고 있는 호주 시드니는 코로나 바이러스 일일 확진자 숫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특히 사업하시는 분들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절망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면예배를 드릴 수 없는 환경이 반복되면서 대면예배와 비대면(온라인) 예배를 겸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위드 코로나 시대는 우리에게 빠른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라는 손짓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용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용기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요, 장애물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장애물을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삼아 문제를 해결해 내는 강인한 정신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여호수아 장군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 장군이 모세의 죽음 이후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하나님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9)고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두려움을 정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큰 용기가 생길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 하면서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 2:3)라고 고백했습니다.
전도 여행 도중에 사도바울은 마게도냐에서 여러가지 환란을 겪으면서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다고(고후7:5)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도 사역 현장에서 경험하게 된 두려움이 있었고, 그 내면의 두려움을 하나씩 돌파하고 전진하여 복음을 전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용기란, 믿음을 가질 때 번개처럼 반짝이며 한 순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 앞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하고 훈련 받으면서 용기를 배워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의 비극 시인 유리피테스는 “아이가 말하는 법을 배우듯, 용기도 배울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게 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용기를 갖기 위해 우리는 서로 지혜를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힘을 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언제 용기가 생길까요?
첫째로, 사명감을 회복할 때 용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주신 사명(행20:24)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사명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우리 목자목녀들에게 다시 사명을 붙잡도록 이끌어 준다면 상황과 문제 앞에서 갈등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다시 용기를 내여 영혼구원에 힘쓰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둘째로, 뜻을 정할 때 용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은 포로생활의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정한 인생을 살았습니다(단1:6).
그 결과 다니엘은 뜻을 정한 그 순간부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있게 포로생활 속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우리도 두려움이 엄습하는 환경이 생길 때 말씀 앞에서 결심하고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위기는 문제 앞에서 결단하지 않고 방황할 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사랑하면 용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 당한 현장에서 도망가지 않고 눈물 흘린 사람들은 12제자들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을 사랑했던 연약한 여인들이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강력한 용기는 사랑에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요일4:18)고 말했습니다. 솔로몬 왕도‘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며,그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같고,바닷물도 강물도 못 끄는 거센 불길이라고 말했습니다(아8:6-7).
우리 주변에 아직 용기가 없어 머뭇거리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까? 두려운 마음 때문에 떨지 말고,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명에 집중해 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정하도록 안내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생길 때마다‘두려워하지 말라’는(이사야41:10)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영혼구원의 현장에서 목사가 떨면 목사를 바라보고 있는 목자목녀들도 떨게 되어 있습니다. 떨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어 담대하게 나아갈 때 우리 목자목녀들도 한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지난 주 수요일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한 집으로 달려 갔습니다.한 성도가 귀신들려 있다는 전화였기 때문입니다.이미 초원지기 부부와 한 목자님이 도착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벌벌 떨면서 집으로 들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초원지기와 목자가 있는 공적인 자리에서 용기를 내어 제 안에 계신 예수님을 신뢰하고<자유케 하는 삶>에서 배우고 가르친 것을 그대로 실습했습니다. “울타리 통신을 잠잠케 허락하노라~!!” 그리고 악한 영과 대화하면서 1시간 10분쯤 후에 귀신이 나가는 것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우리 예수님이 얼마나 능력이 크신 분인지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혼구원의 열정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악한 영은 자매님을 자기가 오랫동안 지옥에 데려가기 위해 계획을 했다고 우기면서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때 저는 제 안에 영혼구원의 열정이 더 필요함을 깨닫고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선포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제 안에 영혼구원의 열정이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문제보다 더크신 분이십니다. 악한 영들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악한 영들이 장난을 쳐도 두려워하거나 떨 필요도 없고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힘든 사역은 우리의 믿음의 용량을 키우기 위해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일 수 있고, 잘되는 사역은 주님께서 도우시는 은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는 빠른 변화 앞에서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시대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 앞에서 버티는 용기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선택해 가는 최고의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대양주 가사원장인 강승찬 목사님의 칼럼을 옮겨 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