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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631> 2022. 1. 23

 

쌍방 대화의 유익

 

작년 초에 같은 제목으로 칼럼을 썼는데, 교통문화협의회 측으로부터, 이 칼럼 내용을 기초로 지하철에 비치하는 사랑의 편지를 제작해도 되는지, 교회로 연락이 온 일이 있었습니다. “쌍방대화라는 말은 한 세미나에 참석해서 들은 말이었고, 칼럼 내용 역시 그 세미나에서 들은 내용을 기초로 작성한 것이었기 때문에, 먼저 세미나 강사에게 연락하여 허락을 받은 후, 제작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참고로, 사랑의 편지가 우리 교회 1층 엘리베이터 옆에도 부착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이 제목과 내용이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 즉 누구나 도움이 되는 필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썼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올려드립니다.

그런데 사실 대화는 상호적이어야 하고, 쌍방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쌍방대화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당연한 것이 중복되어 있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쌍방대화라는 말이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쌍방대화가 아니면 일방대화일 텐데, 일방대화라는 말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입니다.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이미 대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방대화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방대화에서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소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핵심적인 것을 다시 한 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 칼럼이 새해 가정, 직장, 목장, 교회 각 부서 등 공동체 안에서 서로 간의 관계 형성과 원활한 소통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첫째, 쌍방대화는 내가 ()이 되는 훈련입니다.

최근에 갑질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이 말이 큰 이슈가 되어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권력이나 힘이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비상식적인 일을 시키거나 무례하게 행동할 때, 갑질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대화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 직장 상사와 부하의 관계, 선배와 후배의 관계 등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고, 이런 일은 교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공동체에서 질서가 중요하지만, 대화가 일방적, 지시적으로만 이루어지면, 관계가 세워지기 어렵고, 공동체 역시 건강하게 세워질 수 없습니다.

쌍방대화는 한 마디로, 내가 ()’이 되는 훈련입니다. 서로간에 쌍방대화가 훈련되고 익숙해지면, 관계가 건강하고 친밀하게 형성지고, 공동체 역시 건강하고 친밀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둘째, 쌍방대화의 핵심은 경청입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에 대해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린다고 생각되면, 상대방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갑()의 위치에서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정죄하고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려면, 먼저 상대방을 수용하고 용납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던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그들과 식사 자리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볼 때 늘 그들을 정죄하며 옳고 그름의 시선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수용하고 용납할 수 없었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받아들이시는 모습을 오히려 못마땅해 했습니다.

경청하려면 상대방을 수용하고 용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수용과 용납은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셋째, 쌍방대화 훈련을 통한 열매는 나 자신의 변화입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수용하고 용납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을 수용하고 용납하며, 경청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그의 말에 반응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게 되고, 이를 통해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토대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결국 관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변화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쌍방대화 훈련을 통해 얻는 소중한 열매입니다.

쌍방대화에 관한 위 세 가지를 기억하시고, 삶의 현장에 잘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교회와 목장에서 VIP와의 만남, 목장식구들과의 관계, 성도 서로간의 관계, 직장에서 직원들과의 관계 등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세우는데 있어서, 그리고 나 자신이 예수님을 닮아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데 있어서, 쌍방대화가 큰 유익을 줄 것입니다.”

(중보기도 9기 성료감사예배 강사로 오신 남기환 목사님의 칼럼을 옮겨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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