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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614> 2021. 9. 26

 

"교회를 꼭 다녀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목사로서 가끔 받는 질문 중에 하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최근에도 영접모임이 끝나고 막 예수님을 영접한 분에게 동일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자기 주변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를 굳이 다니지 않아도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구원받은 것이 맞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아마도 남편을 말하지 않는가 싶은데, 그 분의 말을 빌리자면 성경에 교회를 다녀야 한다는 구절도 없으니 교회에 구애받을 필요없이 나 혼자 하나님을 잘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원장 코너는 평신도 분들도 많이 보는 것 같고, 평신도 지도자들도 이런 질문이나 상황에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으니 내가 드린 답을 여기에서 나누어 봅니다.

 

그 분에게 일단 이런 생각은 성경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도 좋을 만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고, 세상 가운데 모델이 되어야 할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낼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구약에서 분명히 보이는 것은 공동체성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개인의 잘못에도 함께 벌을 받고,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는 악은 도려내는 수술을 감행하실 정도로 공동체로서의 소명을 강조하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소명을 다하지 못했고, 결국 하나님의 백성, 제사장 나라라는 명칭은 교회로 넘어오게 됩니다(벧전2:9). 따라서 신약에서도 우리의 부르심은 개인의 구원을 넘어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으로의 부르심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신약의 모든 메시지 역시 개인을 향한 말씀이라기 보다는 공동체를 향한 말씀입니다. 말투도 처음부터 끝까지 "네가"가 아니고 "너희가"이고 "너 혼자"가 아니고 "너희가 함께"입니다. 물론 "너희가 함께"라는 말에 믿는 자들 모두를 지칭하는 우주교회라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분명히 당시 모이고 있던 실제적이고 작은 공동체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신약성경은 그 자체가 작은 공동체에게 보낸 실제적인 지침서였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무시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들의 고백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고(16:18), 사도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습니다(1:23). 그 말은 예수님에게는 교회가 전부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무시하면서 어떻게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분이 구원받은 분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참 조심스러운 질문이고, 구원의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가 단언할 수는 문제는 아니지만, 구원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얘기한 이유는 그 분의 말에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믿음의 교만이 들어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연수가 깊어 갈수록 우리에게 생기는 것은 구원에 대한 겸손함인 것 같습니다. 갈수록 구원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나의 부족이 눈에 보이고,나의 그런 부족한 모습이 보일수록, 그런 부족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더 큰 감사로 다가오고, 그러면서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는지,내가 더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는지 찾게 되는 것이 믿음의 성숙의 모습이지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서 나는 구원받았어라는 자신감과 함께 나만 믿음을 지키고 살아도 된다는 생각만큼 교만한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나는 구원받았다 라고 생각할 때 우리가 이루어가야 하는 성화(현재구원)의 과정은 우리로 부터 멀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가장 싫어했던 것이 바로 내가 구원받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 믿음에 교만의 문제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고전9:27). "사도바울이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조금씩 이견은 있지만, 저는 이것이 그가 성도로서 느끼는 자기의 부족함에 대한 긴장과 본인의 믿음에 대한 겸손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랬다면 우리야 오죽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의 확신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자유롭게 다가가고, 따뜻한 관계를 즐기고, 결국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 더 충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어떻게 살아도 괜찮다는 마음의 평안을 주는 일종의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확신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은 이런 말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믿음은 있지만 교회는 다니지 않겠다라는 그 분의 말은 이제껏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므로 그 책임은 그 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저를 포함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교회다움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저를 대신해서 사과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잘못을 깨닫고 노력하는 많은 교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을 기억해 줄것을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장례기간 동안 믿음생활을 등한시했던 가족들과 대화하면서 받았던 질문인데, 마침 국제가사원장 이수관 목사님의 글이 있어 옮겨 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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