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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562> 2020. 9. 27.

 

왜 감사해야 할까요?

(대양주 가사원장인 강승찬 목사님 칼럼을 옮겨봅니다)

 

감사는 목회 현장에서 붙잡아야 할 중요한 단어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과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닫힌 VIP들에게 마음을 열게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주간에 있었던 감사한 일을 한 가지씩 나누겠습니다하고 목장모임에서 나눔의 시간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재난시대를 맞이하여 감사의 고백이 쉽지 않습니다. 감사하고 싶은데 성도들이 직장을 잃기도 하고, 대면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 되거나 시시각각 변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재확산 소식과 정부의 방역 방침의 변화로 인해 스트레스가 더 심해져서 그런지 한 주간의 목회현장을 되돌아보면 감사의 흔적이 좀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감사라는 단어는 모두 알고 있지만 감사를 삶에 적용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감사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불평일까요? 원망일까요? 아니면 무관심일까요? 기도의 자리에서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식사대접을 받게 되면 누구나 대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감사를 표현하지만, 날마다 밥 해주는 아내에게 날마다 고맙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아내에게 진정으로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내가 밥 해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목회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바쁜 일상속에서 물질과 시간을 희생해가면서 열심히 섬기고 사역하는 예절 바르고 부지런한 목자목녀의 섬김은 당연시 하고, 성질부리고 불성실한 사람이 목자목녀가 되면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에 간증시키고 특별히 여기는 실수를 우리는 종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상실해 버린 이유는 당연함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당연함''특별함으로 바꾸어야 일상에서 감사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연함을 보석같은 특별함으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삶을 관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함을 우리는 목회 현장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삶은 일상의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꾼 삶이었습니다.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대할때 황홀함을 느낄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된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 다락방에 들어가서 매일 반복하던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를 3번씩 드렸는데(6:10) 이 기도의 핵심은 '감사기도였습니다.

감사는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처럼 내가 손해보고 힘든 상황에서도 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감사를 나에게 영적으로 체질화 시켜야 합니다. 감사를 다니엘처럼 인격적으로 체질화 시켜야 합니다. 가정교회 3축이 감사가 체질화 되도록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성도들이 간증할 때 감사를 고백하는 것을 보면 여지없이 가정교회 3축을 형성해서 인격의 변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분들임을 목격하게 됩니다.

감사가 체질화 된 다니엘은 이 감사기도 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가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 했지만, 천사의 도움으로 사자굴에서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교회 3축과 4기둥으로 무장된 목회자는 어떤 위기속에서도 다니엘처럼 기적을 경험하게 됨을 목회자 컨퍼런스에 참석하여 사례발표를 들을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결국 다니엘은 비난과 불평이 가득한 세상에서 감사를 통해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감사는 우리의 믿음을 지키게 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해냅니다. 감사는 내 시선이 아닌 주님의 시선으로 인생의 시련을 바라보게 돕는다는 것을 기도할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불평과 원망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발생하지만, 감사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감사는 우리를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여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다니엘은 감사를 통해 늘 깨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교부인 크리소스톰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감사하지 못하는 죄라고 말했고, 마르틴 루터는 마귀는 항상 원망하고 불평할 뿐, 마귀의 세계에는 절대 감사가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감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사단이 원하는 불평을 선택했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불평은 나를 영적으로 잠들게 하고 깨어있지 못하고 영적 게으름에 빠진 내 모습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큰 황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보다 진정한 감사를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 (69:30-31)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감사가 우리 인격에 체질화되어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꾸어 목장모임때마다 감사를 더 많이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를 고백하는 성도들과 목장모임이 하나 둘 더 늘어간다면 코로나 재난 시대에 그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며 교회의 존재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이 늘어날 것이고, 가정교회는 건강하게 세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상황을 잘 분별하고 감사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지혜를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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