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여름캠프를 다녀와서
(7 필리핀목장, 물댄동산 총무교사) 장춘자 집사, 2019.8.18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 물댄동산을 총무교사로 섬기고 있는 7교회 필리핀 목장의 장춘자 집사입니다. 조금 특별한 여름캠프를 다녀온 후 이렇게 간증 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먼저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번 여름캠프는 기독교 유적지인 여수 애양원과 소록도 탐방이 어떻겠냐는 목사님의 권유로 알아보게 되었고 교사와 청소년 목자들과의 회의를 거쳐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1박 3일의 일정으로 거리가 조금 있어 일정이 확정된 후부터 물댄기도회를 가지며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댄친구들 모두 함께 할 수 있도록, 기독교 유적지를 통해 믿음의 선조들의 신앙을 보고 배우며 결단 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좋은 날씨와 장거리 운전하시는 분들 피곤치 않고 안전운전 하시며 안전사고 없는 일정이 되도록 마음모아 기도했고 너무도 좋으신 우리 주님은 아주 화창한 날씨가운데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아픈 친구 한사람 없이 여수까지 4시간 반 만에 잘 도착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감사한 것은 애양원과 소록도 탐방은 예비된 현지교회 장로님들께서 너무나도 자세하게 잘 안내해 주셔서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첫날은 우리교회 청년들로 만나서 결혼하여 여수로 발령받아 살고 있는 고락원형제님과 이다솜자매님과 함께 간만에 친정식구 만나 회포를 푸는 것 같은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고, 여수의 명소 하멜등대와 여수밤바다의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는 둘째날 너무도 맑은 하늘과 함께 먼저 손양원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애양원 교회와 애양원 역사박물관, 손양원 목사님의 기념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애양병원은 미국인 의료선교사 포사이트 선교사님이 길가에 쓰러져 있는 한센병 환자를 치료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워진 문둥병자들을 위한 한센병원이었고, 사랑으로 기른다 양육한다 돌본다는 뜻의 애양원(愛養圓)이라는 이름을 한센환자들이 지었다고 합니다. 사랑으로 환자들을 돌봤던 곳이 바로 애양원 이었고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에겐 천국으로 들어가는 곳으로 불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같은 민족도 외면하고 멀리했던 그들을 먼 타국에서 온 선교사님들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치료해주었고 천국을 선물해 주었는데 이들을 보면서 오히려 천국을 경험했다고 고백하는 선교사님의 글을 보면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기념관에선 장로님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랑의 원자폭탄, 작은 예수님이라는 별명을 가지신 손양원 목사님은 애양원 교회에 부임하시고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고름을 입으로 직접 짜내실 정도로 사랑과 헌신으로 돌보셨고,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으로 옥고를 치루시고 해방과 함께 풀려 나셨다고 합니다. 또한 두 아들을 죽인 자를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으셨고 공산군이 내려와 피난을 가야하는 상황에서도 이들을 두고 혼자갈수 없다고 남으셨다가 끝내 순교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과 말씀을 빼곤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셨고 오직 성경말씀에 하라고 하면 하시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으셨던 분이셨습니다. 신사참배도 우상숭배였기에 말씀에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니 안하셨다고 합니다. 나의 삶도 오직 말씀이 기준이 되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하는 심플한 말씀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은 애양원에서 1시간 반쯤 떨어져 있는 소록도로 향했습니다. 소록도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허락 하에 강제로 전국의 문둥병자들을 소록도에 모아 놓았던 곳입니다. 청소년 시기에 발병하는 한센병은 가족에게서도 외면 받고 버려져 홀로 들어와 단체생활을 하며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병이 더 심해지기 일쑤였고 이곳을 탈출하려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합니다. 소록도 중앙공원엔 아주 귀하고 아름다운 나무들과 바위들이 있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이 아름다운 공원도 이곳 주민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 그곳엔 검시실과 감금실이 있는데 검시실은 모든 한센인들이 죽으면 유가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해부와 생체실험이 행해지고 짧은 장례식을 거쳐 화장되어 납골당에 안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록도인은 3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한센병으로 한번 죽고, 해부로 2번 죽고, 화장으로 3번 죽는다 합니다. 이들에겐 인권이란 사치에 불과한 말이었을 겁니다.
감금실은 말 안 듣는 이들을 말 그대로 감금해 놓는 곳이었습니다. 작고 낮은 방으로 형무소와도 같은 분위기에 매우 무섭게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추위와 더위를 오직 몸으로 견디고 참아야 했을 아픔이 전해져 오는 거 같아 많이 힘들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그러나 그들에게는 해방이 오지 않았다”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광복이후에도 이분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전히 고립되었고 힘겨운 삶이었습니다. 그런 이곳에 7개의 교회가 있었고 지금은 5개의 교회가 남았지만 아픔과 슬픔 고통뿐인 삶에 나를 구원하시고 새 생명주신 예수님으로 인해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고 계신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또 손도 없고 발도 없고 다 일그러진 내 모습이 천국가면 다 똑같은 모습이라는 그 말씀에 큰 천국소망을 가지고 계시며 새벽종 소리에 어김없이 교회에 나와 기도하시고 낮12시 종소리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신다는 말씀에 건강한 육신가운데 기도하기에 게으른 제 모습이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가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신 신앙의 대 선배님들의 모습을 본받기 위해 그리고 사랑에 빚진 자로서의 삶의 자세로 살아가겠노라고 결단해 봅니다.
짧은 일정가운데 조금은 먼 거리였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는 장소로 너무도 귀한 곳을 소개해주시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시며 물댄친구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주시는 담임목사님과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엄마와 같은 넓은 마음과 사랑으로 청소년들을 품으시고 지도해주시는 김문숙 지도교사님과 든든한 후원자이신 임선수 부장님과 함께한 물댄 쌤들, 차량으로 섬겨주신 이태웅쌤과 김기옥 집사님, 말년병장으로 마지막 휴가의 첫날을 물댄 여름캠프로 함께 해준 조범진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아울러 늘 사랑과 기도로 후원해 주시는 사랑하는 아빠 장영용 목자님과 엄마 손경순 목녀님, 그리고 우리 이치범 목자님과 임연송 목녀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 수빈, 준일, 예빈이로 인해 너무도 행복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끝으로 우리 청소년 물댄동산 친구들을 위해 늘 기도와 후원으로 섬겨주시는 우리 행복가족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우리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하시는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