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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464> 2018. 11. 11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이 주는 행복

 

금년 12월이 지나면 제가 만으로 쉰두 살이 됩니다. 저는 집에서 장남으로 자랐고, 제 부친과 조부가 장남이셨고 종가집이었기에 제 항열에서도 어린편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늘 아버지 연세의 6촌 형님들을 보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제가 나이가 먹는다는 것이 별로 실감이 나지가 않습니다.

언젠가부터 흰머리가 부쩍 늘었지만 흰머리는 꼭 나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 점점 느껴지는 사실은 몸이 아프면 예전같으면 금새 뚝딱하고 일어났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과 본래 꼼꼼한 성격이라는 말을 들어왔기에 또한 메모를 잘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요즘 뭔가를 깜빡 깜빡 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잘 잃어버리는 사람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에는 꼭 무언가를 하나씩 들고오는 습관이 있어서 조부께서 살아계실 때 우리 장손은 큰부자로 살거라고 칭찬을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습관을 아직도 고치지 못해 이번에 이사할 때 아내가 많은 짐을 버리면서 제발 좀 쓰지 않는 물건은 좀 버리라고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여집사님들이 제가 뭘 들고오면 가지고 오시지 말라는 부탁도 종종 들었습니다. 그런 목소리 큰 여자(?)들의 이야기에 순종(?)하는 제 자신을 보면 나이가 들어가나 싶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연배이신 성도님들이 많은데 죄송합니다만, 요즈음에 와서 내가 늙어가고 있나보다 하고 확실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최근에 찾아온 노안입니다. 작은 글씨는 돋보기를 써야 보이고, 책도 15분정도 보다 보면 그 다음부터는 흐려져서 다촛점을 쓰지 않으면 곤란을 느낍니다. 또 하나는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머리만 대면 잠이 들던 제가 피곤한 가운데서도 눈이 말똥말똥해서 왜 이러지?’ 하고 생각해 보면 나도 모르게 마셨던 커피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은 생활 속의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확인해 보면 아닙니다. 분명히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아니라고 해서 생각해 보면 정말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퇴근을 하려고 기도제목과 설교자료가 들어있는 아이패드를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겁니다. 분명히 새벽 설교 후 가지고 와서 제 방 회의 탁자위에 둔 기억이 있는데누군가가 내 방에 들어와서 급한 대로 아이패드만 집어 갔다보다 하고는 황망했습니다. 15분을 찾다가 혹시나 해서 목양실에 가보니 여러 책들 사이에 얌전히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요즈음은 분명히라는 단어를 쓰기가 겁이 납니다. 대신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하고 말하게 되고, 또 누가 다른 얘기를 하면 내가 그랬어?’ 하게 됩니다. 수사 중에 취조를 받는 경우였다면 거짓말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그에 따른 주님의 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상황에 대한 이해심도 더 커지는 것 같고, 마음도 더 여유가 있어지는 것 같고, 그에 따라 성격도 조금 더 부드러워 지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젊을 때 시달리던 악습으로부터도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조금씩 더 알아가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위에 저를 기쁘게 하는 것은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빠른 듯 하지만) 본향으로 돌아갈 날이 조금씩 더 가까워진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최선으로 살고나면 나를 맞아주실 그 분이 계신 곳. 내 못다한 꿈이 이루어지는 곳. 모든 잘못된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곳. 그 곳이 기다려 집니다. 그 곳을 진정으로 소망하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좀 더 열심을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혼자서 국내외 숙박을 하면서 어디를 다녀오는걸 무척 두려워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입니다. 이번에 수도권 북부초원 지역목자 부부가 라오스 단기선교를 가는 것도 아내가 함께 가지 않겠다고 했다면 가는걸 포기했을 것입니다. 특히 불편한 다리가 주는 메시지가운데 하나는, 그것을 통해 누군가의 도움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지는 제 자신을 보면서 이제는 어쩌면 조금은 철이 들어가나 싶어 이런게 소확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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