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461호> 2018. 10. 21
양만춘, 그분은 우리 교회 목자였습니다
지난주 예닮동산 운영위원 모임에서 백성훈 목사님의 제안으로 영화를 한편 보았습니다. 조인성씨가 주연으로 나온 ‘안시성’이었습니다. 먼저 보고 온 목사님이 조인성씨의 연기가 안시성 성주의 역할로 맞지 않는다고 하고, 그 동생으로 나온 가수 설현씨가 연기를 너무 못해서 왜 그 영화에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기에 영화가 더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의 말만 듣고 어떤 판단을 잘 내리지 않는 성격이라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생각은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역사적 인물인지 허구적 가상인물인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꼭 우리 교회의 목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성주로서 평상시에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나 당나라 군대의 공격에 맞서 백성들을 이끄는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 교회 목자였습니다.
평상시 양만춘은 백성 위에 있지 않고 백성 옆에 있었습니다. 양만춘은 백성들의 삶에서 떨어져 있지 않고, 백성들의 삶에 가까이 있었습니다. 양만춘은 백성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고, 백성과 자신을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양만춘은 성 안에 있는 백성의 모든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필요가 있을 때 언제든지 달려갔습니다. 아기를 낳은 백성의 가정을 찾아가 격려했고, 치매로 집을 나가 길을 잃은 노모를 찾아다 주었습니다. 양만춘은 자신을 죽이려고 온 사람까지 포용하며 자신을 돕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쟁시 양만춘은 백성들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죽는다고 해도 백성을 지킬 수 있다면 자신의 한 몸을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양만춘은 자신의 행복을 위함보다 백성의 행복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을 해서 승리해야하는 이유는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오직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서였습니다. 양만춘은 전쟁의 패배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리더로서 백성들을 격려합니다. “내가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무릎 꿇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저들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자.”
그런 양만춘이었기에 안시성 사람들의 성주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대단했습니다. 대사 중에 감동이 있었던 것은 “모두가 성주를 안시성 자체로 생각한다. 성주가 안시성이고, 안시성이 곧 성주이다.” 성주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안시성 사람들 누구라도 그를 따르게 했고, 결국 5천명으로 20만의 당나라대군을 이기는 결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 대부분의 목자들이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평상시에는 목원 옆에서, 목원의 삶의 필요를 채워가고자 하며, 자신과 같은 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시간도 물질도, 심지어 자신의 몸까지 희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기시에는 목원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목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보다 더 아픔으로 생각하며,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리더로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압니다.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음봉면 덕지리의 한 교회는 목원들을 섬기기 위하여 진급이 안되기를 기도하는 목자도 있다고 합니다. 더 나은 조건의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는데도 목자의 사명을 위하여 기꺼이 포기한다는 것이죠. 목원들을 더 잘 섬기기 위하여 진급하여 떠나기 보다는 목원 곁에서 머무르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 목자이기에 목원들이 존경하고 신뢰하고 따르며 목원들이 자신들을 희생적으로 섬기는 목자목녀를 말할 때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제가 안시성 영화에 나오는 안시성 성주 양만춘을 보면서 우리 교회 목자들이 생각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제자는 제자를 낳는다고 합니다. 우리교회에 이렇게 충성되고 신실한 존경받는 멋진 목자목녀들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소원은 온전히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