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459호> 2018. 10. 7
목회자를 변질되게 만드는 위험들
(휴스톤서울교회 이수관 목사님의 칼럼을 옮겨봅니다. 이 글이 저뿐만 아니라 목양하는 목자목녀에게도 필요한 말씀이며, 아울러 성도들에게도 지침이 되는 교훈이 될 것입니다)
요즈음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타락했다는 말을 많이 듣는 시대입니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억울한 면도 없지는 않지만, 반면에 그런 말을 들을 만큼 교회가 변한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 가정교회는 담임 목회자의 변질을 막고, 교회의 타락을 막는 정말 좋은 목회의 방식이라고 저는 느낄 때가 많습니다. 가정교회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교회라고 한다면 당연하다고 하겠지요.
예를 들면 가정교회는 평신도에게 목양 사역을 맡겼기 때문에 담임목사가 기도 생활을 게을리 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일반 교회는 교회 사이즈가 어느정도 되면 담임 목회자가 부목사들에게 일을 맡기고 외부로 돌아다닐 수 있지만 가정교회는 평신도에게 목양을 맡겼기 때문에 담임 목사가 목회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담임 목회자가 기도 생활에 집중하고 목회에 집중하는 한은 변질될 위험은 훨씬 적을 것입니다.
또한 가정교회는 보고 배우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목회자가 일거수 일투족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투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섬김을 기초로 하는 교회의 분위기 속에서 새신자들이 계속 들어오기 때문에 평신도로부터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섬기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일반 교회처럼 권위적인 목회자나 말만 앞서는 지도자가 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교회의 원칙을 추구하고 따라가다 보면 교회의 성장은 또 다른 얘기라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목회자가 목회자다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목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의 삶 가운데는 우리를 변질시키는 수 많은 유혹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한두가지 일상적인 것들을 나누어 볼 까 합니다.
첫번 째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변질시키는 것은 목회자의 무례와 교만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교회에서 담임 목회자가 가장 리더의 위치에 있고 영적으로 어른이다 보니까 뭔가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보면 ‘감히! 내가 하자는데..’ 하는 감정이 드는데 그것이 영적인 교만일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교회가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를 보면 바로 그 무례와 교만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많아지고, 자리가 높아져 갈수록 반대에 짜증내지 않고, 내 고집을 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를 누군가의 권위 밑에다 두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내 위에 아무도 없는 사람, 거칠 것이 없는 사람,무서운 사람이 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그 권위는 주님이시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를 눈에 보이는 권위 밑에 두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원로 목사님이든, 장로회이든, 아니면 교회의 어른이든. 그것이 우리가 보호받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변질시키는 두번 째는 타성인 것 같습니다. 내가 목회자가 되었다는 것이 더 이상 감격이 아니고, 내가 목회를 하고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더 이상 감사가 아니라면 그건 이미 우리가 타락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사실일지 모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적으로 무장해제가 된 상태이고 사탄의 공격에 넘어질 가능성이 많은 상태입니다.
보통 자신이 그런 상태인지를 아는 것은 간단합니다. 내 얼굴에 웃음이 사라져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내 얼굴이 웃음이 없고 시무룩하고 심각하다면 그건 나에게서 감사와 감격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되뇌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오늘 하루를 목회자로 살게 하시는 그 은혜가..’ 그리고 활짝 웃습니다. 그러면 다시 충만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의지적으로 웃을 때 기쁨과 감격을 다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목회자를 변질시키는 세번 째는 성적인 타락입니다. 이건 아무리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는 문제입니다. 최근에도 한 존경받는 미국교회 목사님이 성추행 문제로 사임을 했습니다. 한때 존경받던 그런 거인이 무너진다면 우리 중에 누구도 그 문제에는 안전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현재 성적인 타락의 위험에 가장 노출되어 있는 사람은 다름이 아닌 바로 지금 사모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목회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상대방이 이해가 안 되거나, 상대방에 대한 해결되지 않는 불만이 있거나, 자주 싸우거나, 부부의 성생활에 만족이 없는 분은 일단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분들은 유혹에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 째는 상대방이 불만족스럽고 미운 감정이 생긴다면 일단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건 부부의 문제가 아니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럴 경우 일단은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고, 회개의 기도와 함께 도움을 청해야 할 문제입니다. 깊어지기 전에 빨리 빨리 털어내고 재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상대방이 못 마땅하고 불만스러울 때 할 수 있는 두번 째 방법은 작정을 하고 극진히 섬겨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루 날을 잡아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서 데이트할 때처럼 차려입고 나가서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을 사주고 선물 가게에 가서 선물을 골라주는 것입니다. 아니면 상대방을 위해서 선물을 쇼핑해 보는 것입니다.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무엇을 좋아할까 고민하고 예쁘게 포장을 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섬길 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사랑이 솟아 오르고 정말 사랑했을 때의 기억이 새롭게 솟아나게 됩니다. 결국 상대방이 못 마땅했던 것은 바로 다름이 아닌 나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 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나를 보호하면서 사는 것이 목회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