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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동산 칼럼 242호) 2014.8.10

 

 

 

감사하는 인격을 갖추려면,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발견하라.

 

 

지난 수요일(6일) 8-9 실버목장연합 일일수련회를 다녀오고, 8일(금) 이사예배 겸 목장연합 모임을 인도하면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 하시는 어르신들을 뵈면서 담목인 제가 아주 행복했습니다. 섬기는 분들이나 섬김을 받는 분들이나 정말 우리 행복을 여는 교회는 가족이라고, 아니 가족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교회에서 이렇게 섬겨주니 너무 행복하시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정작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잘해 드리지 못하는 제가 사실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새벽에 제 개인적인 기도를 우리 주님께 간절히 드릴 때 한가지는, 육신의 부모님이 떨어져 있기에 잘 섬기지 못하는 불효를 저희 교회 어르신들을 제 부모님처럼 섬길테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혼과 육신을 보호 인도 책임져 달라고 기도입니다. 그 기도에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하나님께서 기도한대로 지금까지 큰 사고없이 무탈하게 지내시는 게 감사할 뿐입니다.

새벽말씀을 증거하고 기도한 뒤에 묵상할 때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기 때문에. 둘째로, 예수님을 만날 때 받을 상급을 기대하기 때문에. 셋째로, 영혼을 구원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닮아가는 보람 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으로 행복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는 소통과 설득이다.’<도서출판 문장>라는 책의 한 부분을 소개해 드립니다.

 

친구가 나에게 노인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노인은 샌프란시스코 교외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사나이로 완고하고 엄격한 인상이었지만, 사람에 대한 이해심은 깊었다.

어느 날 아침, 그 노인의 주유소에 차를 세운 사나이가 레드우드의 요양지는 형편이 어떠냐고 물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는 2주일 산타크루즈에 있었는데요, 아주 즐거웠어요. 경치뿐만 아니라 인심도 좋아 어딜 가나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주유소 노인은 그 남자에게 틀림없이 레드우드 요양지도 마음에 들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한 시간가량 지나 또 한 남자가 레드우드의 요양지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사나이는 이렇게 투덜댔다.

“지난 2주일 동안 아주 혼났어요. 산타크루즈에서는 사람들이 죄다 무뚝뚝하기만 한데다가 즐길 만한 곳도 제대로 없었어요.”

그러나 노인은 두 번째 사나이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레드우드 역시 당신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

그 사나이가 가버리자 내 친구가 똑같은 레드우드 요양지에 대해 물은 두 사나이에게 어째서 전혀 다른 대답을 했는지 노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답했다.

“아니, 나는 다른 대답을 한 것이 아니오. 처음 사람은 전에 갔던 장소에 대해서나 사람에 대해서 아주 좋게 말하지 않던가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어디에 가거나 그곳이 마음에 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뒤의 사람은 불만투성이더군요. 저런 사람은 어떤 곳에 가더라도 재미가 없을 게 뻔해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 이것은 습관이에요. 안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과 원만하게 일해 나가기 위한 첫걸음은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내는 습관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람들을 살펴보라. 그러면 반드시 좋은 점이 발견되는 법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인간의 하찮은 인색한 점만을 발견하거나, 욕심 많고 짐승 같은 놈이고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며 아첨만 잘한다는 따위로 사람을 생각하는, 비관적이라고 할 만한 태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으로 붙어버리게 된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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