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777호> 2024. 11. 17.
“수요성령기도회에 나오세요”
이 세상의 모든 목회자들의 고민 중에 하나는 바로 예배 인도자로서 공예배(주일예배, 주일오후 혹은 저녁예배,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 금요철야기도회 등)를 통한 주님의 임재와 풍성한 은혜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 19년차인 담임목사인 저 역시도 부임한 이래로 이 고민을 날마다 하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입니다. 어떠한 예배나 기도회를 인도하던지 간에 모이는 집회마다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풍성하고 충만하게 임하길 바라는 것은 성도들 역시도 동일한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공예배와 기도회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뜻대로 임재와 은혜가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준비해도 그때 그때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다르기에, 단지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난 후에 임재와 은혜를 기다리며 구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도 그럴 것이 예배 인도자로서 그날 은혜가 임하지 않는 드라이한 예배와 기도회 분위기가 생길 것 같으면, 여지없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마귀가 충동질하여 마치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는 생각을 주입하여 어떤 영적인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조성하고 조작하고픈 마음의 유혹이 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좋은게 좋은 것이니 성도들이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은혜만 받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은혜 만능주의와 목회자로서의 어떤 책임감(?)이나 스스로 잘했다는 하나님없는 자기만족의 종교심이 마치 신앙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습성 때문입니다.
오랜시간 부교역자 시절동안에 그렇게 훈련받았고 그것이 좋은 것이고 주님과 교회를 위하는 것인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14년전 가정교회를 만나고 최영기 목사님을 만난 이후로 최근 몇 년 전에 <더 뉴 생명의 삶>공부와 교수법을 공부하면서 이러한 모든 것들이 진정 성령 하나님의 참 모습을 드러내는데 방해가 되고, 마치 펄펄 끓다가 한순간에 그냥 식어버리는 남비 신앙처럼 점점 더한 것으로 중독이 되어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더 자극적인 신비적이고 홀리한 것들을 추구하게 되어 더 인위적이고 조작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구상하면서 성도들이 눈물 콧물 흘리게 하면 은혜를 끼쳤다고 만족해하고 나름 자신이 신령하다고 자만하고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생명의 삶 공부 중에 <성령님을 체험하는 시간>을 통하여 어떠한 인위적이고 분위기를 조작하는 것 없이도 인격이신 성령 하나님을 담임목사 자신이 체험하게 되고 또한 그런 경험을 하는 수강자들을 보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목회자라는 이름으로 위선과 교만으로 포장해 왔는지를 발견하면서 오랜시간 회개하는 가운데 오직 성령님만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제일 먼저 보게 하신 것이 바로 <수요 성령기도회> 였습니다. 휴스턴 서울교회를 비롯해서 소위 가정교회를 잘한다는 교회들을 찾고 물으면서 때론 영상으로 아니면 직접 방문해서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교회 수요성령기도회가 신약교회처럼 그렇게 불같이 폭발적으로 기도의 영이 충만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램에 대한 거룩한 열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해보았다가 저렇게도 해보았다가 최근까지 소위 방법론적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한주간을 보내는 정중앙에 있는 수요 성령기도회를 이름그대로 성령님이 주인이 되시고 인도하시며 임재하시는 기도회가 되도록 찬양과 말씀, 기도로 이어지는 단순함과 순전함을 통해 오직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기도회로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가운데, 지난 8월 목자컨퍼런스와 부산에서 열린 지역목자수련회를 통해서 보고 경험하게 하신 그대로 정리가 되었고, 그래서 기도회 순서를 만들게 되었고 지난주간을 포함해 4회차 섬기게 되었습니다.
수요 성령기도회는 주일을 지나온 3일과 주일까지 보내는 3일의 중앙에서, 모든 목장들이 연합하여 공동체 연합기도회로 모이는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봄가을로 중보기도실에서 하는 개인 중보기도 사역을 감당하고 있고, 조용하게 드리는 주중 새벽기도회가 있지만, 함께 합심하여 함께 마음을 다해 소리를 내면서 함께 부르짖는 기도회는 수요 성령기도회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배고픈 것은 사실입니다. 보컬이 두 분 밖에 없고, 키보드 외에는 어떠한 세션도 없으며 모이는 성도들도 20명 내외이다 보니 규모로서는 아직 연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대형교회에서 하는 목요찬양집회나 금요철야기도회는 아니더라도 정말 하나님 앞에서 함께 우리라는 의식을 가지고 기도하고 싶고, 회복과 치유의 현장이 필요함을 느끼는 연합교회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목자목녀를 중심으로 성도들이 남녀노소 할 것없이 다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자발적인 기도회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한마디로 두 날개로 비상하는 교회였습니다. 한쪽 날개는 기도하는 교회이고, 다른 한쪽 날개는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기도없이 영혼구원이 일어나지 않으며, 영혼구원은 결국 기도의 결과라는 것을 알았던 신약교회 성도들은 그래서 그렇게 매일같이 모였고 날마다 교제하며 기도하기에 힘썼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말씀하신대로 열흘동안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임하셨던 성령님의 강림도 그들이 전혀 기도에 힘쓴 결과였음을 볼 때에 교회의 성장과 성숙의 동력은 바로 함께 모여 기도함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수요 성령기도회에 나오십시오. 수요 성령기도회에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인위적이고 조작된 분위기가 아닌 순전하게 성령님을 갈망하면서 찬양하고 간구하며 중보하는 자리에 나와 예수님 안에서의 안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누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빌립보서 4:6-7, 개역개정)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사도행전 2:1-4, 개역개정)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요한계시록 8:3-5, 개역개정)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아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