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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생각의자 769> 2024. 9. 22.

 

주의 ! 편가르기 영성

 

저는 지도자를 세울 때 점검하는 중요한 성품 중에 편가르기의 모습이 없는지 살폈습니다. 이런 영성도 인간관계 가운데 얼마나 마음의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인가에 달려 있기는 하지만, 하여튼 교회에서 이 편가르기의 영성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노력했습니다. 편가르는 영성의 대표적 표현이 자기는 옳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잘 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원망과 잔잔한 분노가 그 인격 가운데 분위기로 나타납니다. 남의 허물은 실랄하면서도 같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아주 유연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편가르기의 영성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엄청 노력했습니다. 좋은 말 많이 하거나 듣는다고 해서 좋아지지 않는 인간의 죄성에 대해 철저한 절망감에 시달린 저로서는, 목회하면서 어떻게든 잘 봐주고 붙여주고 서로 다른 차이점을 이해하는 넉넉함을 공동체 전체가 연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전화를 끄지 않거나 벨 소리를 묵음으로 줄여 놓지 않은 실수에 대해, 많은 교인들이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설교를 중단하고 중요한 전화일지 모르니 받으셔도 된다고 이야기 함으로 남을 정죄하려는 인간의 불편함을 순화하려고 했습니다. 찬양할 때 가사를 띄우는 화면을 보던 중, 찬양은 다음 절로 가야 하는데 화면을 조금 늦게 넘기거나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을 때 불편해 하는 분들을 위해서, 누구보다 미리 시간 내서 많은 정보를 화면으로 옮기는 작업을 매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영상팀을 위해 설교 중간에 일부러 전 회중이 박수를 치며 격려하도록 했습니다. 헌신의 수고를 생각하기 보다 약간의 실수를 "지적함"으로 자신의 우월감을 증명하려는 끈끈한 죄성으로 편을 가르는 모습을 순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배시간에 좀 늦게 온다고 문을 닫아 건다든지, 늦게 온 사실을 드러내 지적하는 분위기가 없도록 노력했습니다.

물론 예배시간을 잘 지켜야 하고, 영상 사역에 마음과 정성을 집중해서 실수가 없어야 하고, 예배가 시작되면 전화 벨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은 알지만, 혹이라도 깜빡해서 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잠시 다른 기계를 조작하느라 영상 넘기는 것이 늦어지고, 교회 오다가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늦게 오게 된 구체적인 상황을 잘 모르면서, 남의 허물을 지적하는 영적인 태도는 공동체를 갈라 놓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일반 교회를 다닌 경험에서 누누히 보았기 때문에 이런 편가르기 영성을 주의하자고 수없이 이야기 했습니다.

교회 식구들의 관계에서는 용서와 긍휼과 격려가 자연스러울 때까지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흔히 보는 일은 아니지만, 교회 안에서 지도자에 대한 신임을 묻는 "투표"라는 제도도 공동체의 하나된 마음을 갈라놓는 세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식구들에게 미리, 그리고 잘 부탁을 해서 교회 식구들과 오래 "붙어 있도록" 해 달라고 자주 부탁했습니다. "김목사는 어디 오라는데도 없고 갈데도 없기 때문에, 제 부족함을 여러분이 채우셔야 합니다. 제가 잘못하면 덮어주시고, 말 실수 하면 그럴 수 있지 하시고 좋은 것 배우는 곳이 있으면 보내 주세요. 그래서 언젠가 주님 앞에 서면 우리 모두 서로 세워 주는 섬김으로 예수님께 칭찬 듣는 상급이 되어 주세요" 누누히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도 비전교회에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행복하게 교회 식구로 출석하고 있습니다. 평생 섬긴 공동체를 은퇴했다고 떠나야 한다면, 그것은 뭔가 목회하는 동안 사람 관계와 목회의 영성에 문제가 있는 목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 중에는 신임투표를 통해 자신이 그 교회에 계속 목회해야 하는지를 교인들에게 묻고 70% 80% 90%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어 "나름대로" 신임을 얻었다고 하며 목회를 하는 모습도 종종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준을 초과한 찬성으로 계속 목회하게 된 후에는, 반대한 사람들이 누굴까를 궁금해 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반대로 신임 투표에서 반대한 사람들이 많으면 사임하는 경우도 많았고, 더 큰 문제는 그런 교회를 다닌 교인들은 편가르기의 영성을 보고 배워서 그것이 옳은 줄 안다는데 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서로 신뢰하고 격려하고 서로 잘 되게하는 사랑과 격려의 관계를 연습해야 할 교회 공동체에, 서로 의심하고 서로의 다른 점에 대해 용납하지 않으며, 반대로 내가 "사람"들에게 이만큼 신뢰를 얻은 "사람"이라는 은근한 교만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여러번 이야기하고,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진정 예수님의 보혈로 묶여진 공동체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가족이라면 서로 잘 봐주려는 용서와 긍휼의 영성을 만들고 깊어지게 하는 모습을 만들어야 함을 많이 연습했습니다.

직분자를 세울 때도 세우려는 사람의 영성과 삶의 태도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매를 피차 "모르는" 군중(교인들)이 모여 투표하는 모습도 제 마음에는 공동체의 하나됨을 해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가정교회에서는 목자들이(교인들이 아닌) 목자들 중에서 교회 리더(직분자)를 세우기 때문에, 방법은 여전히 투표지만 이미 관계속에서 서로의 영성을 "알고 있는" 목자들이 자신들의 리더를 뽑고, 그 후에는 교회 리더들과 함께 직분자로 선출된 본인, 배우자, 자녀들의 인터뷰를 통해 건강한 관계의 열매가 확인되는 리더를 세웠습니다. 동시에 찬성 몇 % 이상, 또는 다수결이라는 기준을 정해 놓고 결국 반대표가 나오게 되는 세상 방법보다, 제일 많은 목자들이 마음을 모아 세우려고 하는 한 명을 리더로 세우는 방법으로 노력했습니다.

아직도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교회 공동체가 하나되는 것을 방해하고, 공동체를 갈라놓는 투표나 다수결, 신임 묻기 등의 방법들을 지양하고, 어떻게든 세워주고 용납하고 격려하는 영적인 태도를 만들어 나가는 교회 공동체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누구에게나 알려지고 인정하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교회 리더들(6)이 세워지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리더를 인식하고 세울 줄 아는 공동체와 목회자가 되는 길이 이미 가정교회 안에 다 녹아 있기 때문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시끄럽게 하는 교회 회의가 없어지고, 기쁨으로 지도자를 세우는 절차들이 가능했습니다. 해 본적이 없는, 그리고 본 것이라고는 세상에서 하는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은 하면서도 여전히 반복하는 편가르기의 영성에 시달리던 제가, 가정교회의 섬김과 희생의 넉넉함으로 편가르기의 영성이 거의 사라진 환경에서 목회하게 된 것이야말로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신뢰와 격려와 희생으로 공동체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따뜻한 가정교회가 너무 좋습니다.

 

(북미 가사원장 김인기 목사님의 최근 칼럼입니다. 이 칼럼을 읽어 보면서 제 안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을지 모르는 또는 있는 <편가르기 영성>이 무엇이 있을까를 내내 고민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담임목사라는 이유로 남의 허물을 직간접적으로 지적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름 그분을 바르게 세우고픈 마음에서라고 변명을 하고 싶지만 용서와 긍휼과 격려가 아니라면 그것이 언젠가는 씨앗이 되어 편가르기가 될 것이기에 우선적으로 제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생각만 하지말고 디모데후서 4:7-8<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하십시오.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말씀처럼 자꾸 몸의 훈련을 해야 겠습니다. 저도 김목사님처럼 목회를 하면서 교우들에게 믿음이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기에, 하여 나름 성령님의 열매에 대한 성품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엄청 강조하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목인 제 스스로가 저도 모르게 내로남불식의 이런 편가르기 영성으로 목회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도록 더 조심하고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믿음에 대한 선한 영향력은 수신제가(修身齊家 = 자신의 몸과 마음을 먼저 닦고 집안을 다스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금 명심하게 됩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

모든 일에 사랑!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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