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행복을여는교회

목회자코너

조회 수 1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목사님의 생각의자 636> 2022. 2. 27.

 

약하기 때문에 사용하신다

 

80명의 목회자가(사모를 포함하면 90) <123기도 요원>이 되어 하루에 123초 이상 저와 가정교회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123기도 요원들이 제출한 교회, 가정, 개인을 위한 기도 제목을 갖고 새벽에 기도합니다.

한 목회자가 기도 제목을 최영기 목사님의 영성과 성품을 닮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이것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분이 최 목사를 잘 모르는구나!” 그래서 한 번 쯤은 제 내면세계를 밝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 글을 씁니다.

 

우리 주위에는 착한 성품과 맑은 영성을 가진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제 영성은 자연스러운 영성이 아니고, 노력하여 얻어진 영성입니다.

저는 체질적으로 거룩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저는 담배 연기로 자욱한 방에서 술 마시면서, 포커 판을 벌일 때 가장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미국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에는 성인잡지 한 가운데 있는 벌거벗은 여성 사진을 뜯어내서 기숙사 벽을 도배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후에 이런 퇴폐적인 욕구가 싹 사라진다고 하는데, 제 경우는 아닙니다. 구원 받은 후에도 계속 이런 욕구와 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목회자들이 죄를 짓고 넘어질 때에어쩌면 목사가 그럴 수가 있어!”라고 비난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그런 자리에 있지 않다 뿐이지, 저도 얼마든지 같은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 같으면 차라리 제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오.”라는 기도를 종종 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원치도 않는데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죄로 인하여 넘어지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주님의 교회에 엄청난 파괴를 가져올 것입니다.

저는 종종 투정하듯이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성품이 착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선택하여 신약 교회 회복의 사명을 맡기시지, 왜 저 같이 성격이 못 됐고, 부패한 성품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를 다쳐 줄 위험 부담을 감수하십니까?”

그런데 이러한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쓰시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께 의지했을 때에 하나님 사이즈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후 12:9).

하나님께서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을 불러서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사용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사도권을 주장할 수 없었고, 오로지 성령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강점도 많았지만 약점도 컸던 것 같습니다. 성격이 강해서 남과 쉽게 부딪혔습니다. 외모도 별 품 없었고(4:13-14), 말도 유창하지 못했습니다(고후11:6). ‘몸의 가시라고 부를 수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도 안고 있었습니다(고후12:7).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사역을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불러서 사용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도라면 내면적인 죄와의 갈등이 없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7장에 묘사되어 있는 죄와의 처절한 싸움을, 어떤 주석가들은 크리스천의 구원받기 전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글의 흐름을 보아도 그렇고 내용을 보아도 그렇고, 구원받은 후의 상태를 그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죄와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계명을 지키려 했을 때 어김없이 맛보는 패배감. 오로지 성령님께 의존했을 때만 승리할 수 있는 죄와의 싸움. 그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을 죄인 중이 괴수라고 부르기도 하고(딤전 1:15), 자신은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2:20).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용할 수 있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고(고후 12:9) 세상적으로 볼 때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3:8).

많은 크리스천 리더가 죄에 넘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는데,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루고 나면 자신이 유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다가 잠재해 있던 약점들이 드러나면서 무너져 버립니다. 솔로몬 왕이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약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왜 저처럼 그릇이 크지 못하고, 부패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쓰십니까?”라는 기도는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타락된 본성이, 언제 머리를 들고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를 안고 사는 것 같은 조마조마함을 갖고 삽니다.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제 삶과 사역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을 안고 삽니다.

그래서 저는 죽음의 날, 부활을 날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그날에야 비로소 죄성으로 찌들어진 육신을 벗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어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42월에 가사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전 가사원장 최영기 목사님의 칼럼입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한 이후 담목에게 찾아왔던 여러 가지 내면의 갈등과 최근에 목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경험하면서 제 자신 뿐만아니라 우리 행복가족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기에 다시 옮겨 봅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모든 일에 사랑을!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