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생각의자 609호> 2021. 8. 22
"영적 지도자"
교회 안에서 설교나 강의를 통해 많이 듣는 단어가 "영적 지도자"입니다. 세상과는 달리 교회이기 때문에 "영적"이라는 형용사가 붙습니다. 영적 지도자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내용은 그렇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미 정해진 명칭이나 교회에서의 직분은 지도자인데 그 인격과 관계에서 나타나는 열매들을 보면 지도자다운 내용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정한 절차에 따라 지도자를 세우는데, 절차 자체나 절차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좋은 지도자라야 하고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모여있는 사람들(군중)의 수준과 영성에 따라 훌륭한 지도자가 세워지기도 하고 공동체에 상처를 주는 지도자가 나오기도 합니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는 완성된 사람이라기보다 만들어져 가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결국 지도자를 세우려는 공동체가 어떤 영적 지도자를 세우려고 하는지 그 그림을 잘 인식하고 인내하며 함께 만들어져 가겠다는 결단도 필요합니다.
또한 사람은 늘 변합니다. 성숙하게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뭔가 지도자라는 이름이 붙여지면 점점 방자해 지는 사람도 있고, 처음에는 잘 하다가도 숨겨져 있던 쓴뿌리와 죄악된 성품이 드러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끼리는 뭐가 확실하거나 완벽하거나 변하지 않는 질서, 성품, 환경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변수들을 품고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는 그 공동체의 성숙도와 변화에 따라 처음에는 구체적인 내규를 정하고 그 절차를 따라가는 것이 안전하지만, 나중에는 그런 내규나 절차는 초월하는, 그래서 이미 공동체 안에 정확히 드러난 지도자다운 영성이 자연스럽게 인정되고 기쁨으로 세워지는 모습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선배 목사님께서 들려주신 말씀 중에 "목사는 목사가 되기전에 자신의 인간 관계를 먼저 살펴 보아야 한다, 그 인간관계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뻐하며 그런 밝은 인간관계 속에서 영혼에 대한 감각,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간절함이 자신의 마음에 불타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자기 혼자 하나님 은혜 받았다고 신학교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습니다. 목사 뿐 아니라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세울 때도 그 사람의 인간관계가 점검되는 구조적 틀이 필요하고 그 사람이 나타날 때 주위의 분위기가 어떤지를 알 수 있는 현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틀과 현장이 결국 신약교회의 모습과 영성을 어떻게든 회복해보려는 가정교회 안에 다 들어 있음을 발견하고 틀과 현장의 내용을 교회 생활 가운데 구체적으로 담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또한 매년 교회 공동체의 성숙도에 따라, 영혼구원의 영성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느냐에 따라, 탄력성있게 유연하게 계속 형식과 내규와 틀을 바꾸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를 세우는 기본적인 틀도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 정말 기도하며 결정했다면 그것이 하나님 주신 응답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지, 어떤 실제적 체험이 결과로 나와야 하는지, 이런 영적 감각에 대한 내용도 설득하고 설명했습니다. 의외로 성도들이 그런 구체적인 그림을 보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규를 바꾸거나 직분자를 세우거나 교회 살림을 보고하거나 교회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기도하지 않고 들어와서 갑자기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일은 다 사라졌습니다. 영적 지도자를 세우는 가장 기본 바탕인 공동체 전체가 목장 생활을 통해서 영혼을 섬길 줄 아는 목회적 차원의 믿음생활을 오래 했고, 이제는 자기 증명이라는 죄성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일을 찾는 영적인 방향이 확실해 진 증거가 있을 때 지도자들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방법이 가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교회 공동체가 영혼을 섬기는 교회 본질을 회복한 증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영혼을 섬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 지도자가 되더라는 사실을 자주 드러내고 자주 예를 들며 자주 설명했습니다. 목장에서 영혼을 섬기는 목회의 경험이 온 교회에 기본으로 준비되어 있고 한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이 각자의 삶에 체험이요 목표가 되는 현장, 목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북미가사원장 김인기 목사님의 칼럼의 내용속에 동일한 감사를 발견하여 옮겨 봅니다)
자연스런 영성, 생활화된 헌신 +shalom 신규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