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장례를 마치고
(4 바기오목장) 조재호/ 홍은미, 2019년 5월 28일
안녕하세요? 4교회 바기오 목장의 조재호목자, 홍은미목녀입니다.
먼저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름심을 받은 아버지를 천국으로 아름답게 배웅할 수 있도록 장례 기간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간증할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햇살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봄날은 어김없이 매년 돌아오는데 아버님의 사고 이후에 우리 부부는 모든게 아버님께 초점이 맞춰서 있었고 올해는 봄 햇살을 느껴 볼 겨를도 없이 그 흔한 위로나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하루하루가 분주함의 연속이였습니다.
3주 전에 갑작스럽게 심장에 이상 증상으로 일산병원 응급실에 심장부정맥이 발견되었고 심장내과 진료예약이 되어 있어 병원에서 앞으로 해야할 검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24시간 심전도 기록 장치를 부착하고 병원을 나서는데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제가 가기 전에 돌아가실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아내와 형제들에게 급하게 연락을 하고 한달음에 병원으로 가는 중에 아내와 다시 통화를 했습니다. 아버님의 병세가 안 좋을 때마다 호출을 받았는데 그때 마다 달려와 함께 해 주는 아내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아직 아버님과의 이별이 준비되지 않았던 그날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만으로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간의 몇 번의 호출을 받고 달려가기는 했지만 전화를 끊고 허둥대는 나의 모습 속에서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목사님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말씀드리고 병원까지 가는 동안 이미 눈물이 쉼 없이 흐르는 것이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었지만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양쪽 팔에 꽂혀 있는 링거와 산소 호흡기를 의지하고 주무시듯이 편안하게 누워계시는 아버님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님께 연결되어 있는 기계 속에 반응이 멈춰질 때 쯤 의사가 다가와 청진기로 여기저기 반응을 확인하며 제가 도착한 후 10분이 채 안된 1시40분에 사망 선고를 했지만 아버님의 정확한 고백을 이미 수차례 들었고 구원의 확신을 확인했기에 감사함으로 기도하며 아버님의 마지막을 함께 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기된 얼굴로 눈가에 눈물이 가득차 달려온 남편에게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간 누구보다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아버지” 부를 때 마다 또렷한 반응으로 소통했던 아버지와의 시간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선물 같은 시간이였습니다. 제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뇌수술을 하시고 10년이 넘도록 누워서 지내시던 아버지가 몸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나 일상생활을 하시던 아버지께 그리 살갑지 않는 아들로 큰 효도 한번 하지 못했던 저로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스무살 이후의 36년의 시간이 한편의 영상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남들은 다 있을만한 행복한 추억하나 없이 그렇게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저는 저대로의 시간을 보냈던 세월 속에서 나누지 못한 사랑을 짧은 말 한마디로 때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하고 불러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저는 좀 더 좋은 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속내를 잘 들어 내지 못하지만 착한 남편의 걱정을 알면서도 뾰족한 말로 무심한 형제들을 불평했던 일들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남편과 소득 없는 대화를 하려고 했던 저의 어리석음에도 한 번도 반응하지 않고 잠잠이 침묵하며 자신의 일을 하던 남편의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이 “아들 어디 있어요?” 라고 물으면 또렷한 시선으로 바라보시고 “고생 많았다” “고맙지” 하고 말씀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이 우리 부부에게 큰 힘이 되었고 모든 것을 참아 낼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 사고 이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은혜의 눈물을 허락하셨던 하나님 아버지는 장례를 치르며 비시자 가족들과의 해결하기 힘든 갈등상황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게 하셨기에 오히려 침묵하며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제가 어떤 말로 주장을 하거나 논쟁을 했다면 지금의 평안은 느낄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례기간동안 예배를 통해 우리 형제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구원의 계획을 기대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이미 두 달 전부터 중보기도를 하며 아버님의 장례를 준비했기에 비신자 가족들 사이에서 장례를 지내며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갈등 상황을 만날 때 한 번도 감정의 흔들림이 없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남편을 보며 이것이 응답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우리 4식구가 철저하게 고립되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포기 할 수 없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손해를 보더라도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행복가족들이 함께 해준 위로예배 입관예배 천국환송예배를 통해 보여준 사랑 때문이였습니다. 행복가족들이 찾아와 함께 밥을 먹어주고 함께 곁에 앉아있어 주고 함께 이야기를 해주고 함께 아픔을 나누어 준 것으로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더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데 비신자 가족들은 이미 천국에 가신 아버지를 향해 좋은 곳을 가시길 부탁하는 정도의 인사를 하며 제사밥에 연연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목사님이 전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구원의 기회가 되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비신자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할 수 만 있다면 복음을 전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버님 방을 정리하며 장롱 속에 포장도 벗기지 않는 옷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뭐 그리 좋은 것도 아닌데 새 옷은 그대로 두고 익숙한 것만 입으시려고 했는지 좀더 살뜰이 챙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 방에 늘 그렇게 있던 장롱과 문갑이 이제 더 이상 그 방에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버님의 온기가 느껴지는 그 방에 범진이 책상을 옮겨놓고 할아버지가 방을 선물하고 가셨다며 눈물 짖던 범진이가 그 방에서 기타를 치고 피아노를 치며 할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정신이 없으셔서 용돈을 꼭꼭 숨겨두시고 찾지 못해 제가 가져갔다고 아니면 소희가 가져갔다고 역정을 내시던 아버님이 잃어버린 용돈은 청소를 하며 찾았습니다. 그리고 아버님방 도배하는 비용으로 사용하였으니 벽지색이 바랄 때까지 추억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장례를 치르며 가족이상의 가족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일이 이름을 기명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오셔서 함께 해주신 행복가족 모두의 위로와 사랑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장례기간에 매일 찾아와 든든하게 함께 해 준 길상구 성도님 박영숙 집사님 감사합니다.
목녀 보다 더 슬퍼하며 함께 울어 주고 목녀의 마음에 깊이 공감해 준 서미정 집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위로의 메시지로 마음을 나누어 주고 목장에 꼭 오겠다고 약속해준 서미정집사님 남편 김창균형제님에게도 감사합니다.
많이 피곤할텐데 늦은 밤까지 함께 있어 주며 웃게 해 준 이신성 형제님과 소현희 자매님 감사합니다.
하루에 두 번도 마다하지 않고 길을 안내하며 찾아와 준 이영희 자매님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주며 의리를 지켜준 박금자 자매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목자 목녀를 돕는 귀한 동역자된 바기오 목장의 목원들 모두 사랑합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나를 만나 고생 많았던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매번 심방오실때마다 아버님의 구원을 점검해 주시고, 천국입성에 대한 확신있는 대답을 통해 우리에게 천국영생의 소망과 확신으로 믿음을 다잡을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언제나 위기의 상황이면 제일 먼저 달려와 위로해 주시며 자신보다 행복가족들을 위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시는 우리 목사님과 쉽사리 자리를 일어서지 못하고 곁에서 위로해 주시며 대신 화도 내주시고 함께 해주신 우리 사모님 그 사랑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우리 부부와 동행하시며 우리보다 우리의 필요를 더 잘 아시고 열린 마음으로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